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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추억여행(4) 합스부르크 왕조의 고향 … 비엔나 >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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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행 조명환의 추억여행(4) 합스부르크 왕조의 고향 …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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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크리스천 위클리| 작성일2020-10-07 | 조회조회수 : 4,6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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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 그라벤 광장의 모습


    비엔나는 영어로 부르는 말이고 독일어로는 빈(Wein)이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이 나라는 독일어를 쓰는 나라다.

    오스트리아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일까?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그런 음악의 거장들이 활동했던 도시가 아마도 떠오를 것이다. 물론 비엔나 소년 합창단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나라의 유명 문화 아이콘이다. 그 뿐이랴! 알프스도 있고 비엔나 커피도 있다. 또 있다. 캘리포니아의 주지사를 지낸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이 나라 출신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이 도시에서 한국 대사로 일한 적이 있다. 영화배우 신상옥, 최은희 씨가 북한에 납치되어 간 뒤 벼르고 벼르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곳이 이 곳 비엔나 미 대사관 앞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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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벤 광장 중심에 서 있는 이 탑은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감사하여 세운 기념탑이다

    유명한 석유수출국 기구(OPEC)의 본부도 여기 있고, 국제 원자력 기구(IAEA) 본부도 이곳에 있다. 또 하나의 대단한 인연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영부인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가 바로 이 나라 출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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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스부르크 황가의 여름황실 쉐브른 궁전

    히틀러하면 우리는 당연히 독일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오스트리아 린츠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화가지망생이었다. 비엔나에 있는 미술학교에 여러 번 지원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화가의 꿈을 접고 독일로 가서 그는 정치가의 야망을 키웠다. 만약 그가 미술학교에 입학이 허가되어 비엔나에서 화가 인생을 살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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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이 도시엔 재오 한인 연합회가 있고, 1970년대 이곳으로 온 100여 명의 간호사들이 뿌리가 되어 조직된 재오 간호사 협회도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서독으로 1만 2천여 명의 간호사들이, 이민 간 것과 비교하면 숫자는 적지만, 오스트리아 한인 사회를 이루는 기둥 역할을 한 분들이다. 비엔나를 비롯해 짤스부르크, 인스부르크 등에는 오스트리아를 통틀어 10개 정도의 한인교회가 있다. 가톨릭, 감리교, 장로교, 순복음 교회 등 교단 배경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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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레지아 여왕이 국가를 위해 죽은 병사들을 위해 세운 기념탑

    오스트리아란 나라가 세계 1차 대전에서 패배할 때까지만 해도 이 나라는 유럽을 호령했던 나라였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찬란한 왕조를 건설했던 합스부르크 왕조는 1,200년 대 부터 1,900년대 초까지 약 600년의 길고 긴 세월동안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을 쥐락펴락했던 왕조였다. 독일 남부지방에서 시작된 이 왕조는 신성 로마제국에서 크게 부흥하여 힘 있는 왕족들과 사위, 며느리로 두루두루 사돈을 맺고 문어발식으로 권력을 분산시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왕실가문으로 군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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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쇤부른 궁전의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74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마지막 계승자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트링겐의 공작인 프란츠 스테판과 결혼함으로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로 바뀌게 되었고 결국은 합스부르크 정통 왕가는 단절되었다.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의 프란츠 2세는 스스로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칭하였고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즉 2중 왕국의 황제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8년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는 그를 마지막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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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 커피. 비엔나를 통해 유럽에 커피를 처음 전래시킨 것은 터키군들이었다

    여기서 말하려는 사람은 마리아 테레지아. 비엔나의 쇤부른 궁전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을 여행하면서 이 마리아 테레지아의 위대한 통치력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그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항가리, 크로아티아, 뵈멘, 만토바, 밀라노,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파르마 등의 통치자였다고 적혀있다. 결혼 하면서 로렌 공작 부인이 되었고 신성 로마 황후의 지위를 얻기도 했다. 얼마나 대단한 군주인가?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1713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 공표되었고, 아버지 카를 6세가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다. 프란츠 슈테판과 결혼하여 무려 16명의 자녀를 낳았다. 자녀들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세프 2세(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황제),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다가 프랑스 혁명 때 콩코드 광장에서 민중에게 처형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그녀의 자녀들이었다.

    합스부르크 왕조에 얽힌 수많은 비화들이 있지만 사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왕조의 얘기가 뭐 그리 흥미가 있겠는가? 이 정도에서 접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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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의 아이콘 세인트 스테판 성당은 지붕의 독특한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오히려 비엔나 커피를 얘기하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말처럼 비엔나엔 비엔나 커피가 없다. 전 세계를 휩쓴 스타벅스 커피가 이 도시인들 그냥 스쳤을까? 미국 커피가 비엔나 커피를 점령했다고 이 도시의 사람들이 투덜댔다고 하는데 내 입엔 비엔나 커피나 스타벅스 커피나 다 그게 그거다.

    차가운 생크림의 부드러움과 뜨거운 커피의 쓴 맛,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진해지는 단맛, 한 잔의 커피에서 3가지 이상의 맛을 즐기는 것이 비엔나 커피의 매력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비엔나까지 올 필요도 없이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즐기면 된다.

    약 3백 년 전 터키군이 비엔나까지 침공해 왔을 때 전쟁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전쟁이 되었고 결국 기독교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자 터키 군이 후퇴하면서 놓고 간 것이 커피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슬람군의 전리품이 커피였고 그것이 비엔나 커피의 기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커피의 고향은 아프리카 에디오피아가 아니던가? 거기서 배를 타고 중동으로 수출되어 무슬림들을 통해 서방에 전래된 것이다. 그러니까 커피를 유럽에 최초로 전래시킨 사람들은 터키의 무슬림들이다. 서방역사의 많은 부분은 그래서 무슬림들과 더불어 살아온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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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벤 광장의 ‘플레이그 칼럼’은 일명 삼위일체 탑이라고도 불린다

    비엔나의 최고중심지 그라벤 광장이 있다. 이 그라벤 광장의 매력에 빠져 베토벤이나 모찰트도 비엔나 거주를 결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많은 인파들이 언제나 꽉 메우고 있지만 유독 하늘높이 눈에 띄는 금탑 하나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바로 ‘플레이그 컬럼(Plague Column)’이라 불리기도 하고 ‘삼위일체 탑’이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기념탑이다.

    16세기와 17세기 흑사병이 비엔나에도 덮쳤다. 1541년도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비엔나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1679년에도 흑사병이 창궐해 1만 2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1713년 마지막 흑사병까지를 포함하면 세 번의 재앙으로 비엔나 인구 10만 명 이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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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스테판 성당은 너무 웅장해서 카메라로 다 잡기 어렵다

    합스부르그 황제 레오폴드1세는 흑사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자 이 전염병을 거두어 주시면 하나님의 은혜를 만방에 알리기 위해 큰 기념탑을 세우겠다고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흑사병이 물러간 후 그는 약속대로 조형물을 세웠다. 이 조형물의 정식이름은 ‘삼위일체 탑’이다. 그 후 터키군을 물리친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덧붙여 목조이던 탑을 현재의 대리석 탑으로 완공했다.

    탑의 모양은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믿음을 상징하기 위해 세 개의 기둥으로 조각되었고 천사와 성녀가 함께 악마를 제압하는 모습, 왕이 왕관을 벗고 하나님께 겸손히 경의를 표하는 모습 등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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