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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보기도 전에 발생한 세 가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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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NEWS M| 작성일2024-03-06 | 조회조회수 : 6,1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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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대강 풍수, 좌파, 미국 영화 잡지 Variety 



    영화 '파묘'의 흥행 속도가 대단하다. '서울의 봄'보다 기세 좋게 600만을 돌파했고 1000만 달성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안타깝게 미주에서는 아직 관람할 수가 없고 개봉소식도 없다. 장재현은 전작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통해 오컬트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오컬트가 기괴하고 신비적인 분위기를 잔뜩 끌어 올린 장르지만 장감독은 오컬트 양식을 빌어 사회현상을 담아낸다. 


    또한 장감독은 검은사제들에서는 가톨릭 사제(김윤석 강동원)를, 사바하에서는 이단 전문 연구가인 목사(이정재)를 전면에 내세워 '정통' 종교와 오컬트의 세계관이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전찬일 평론가가 '파묘'를 두고 한국 영화 중에 무속신앙과 개신교의 관계를 이토록 잘 풀어낸 영화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이번 작품에서도 기독교의 색채가 가미된 것 같다. 지금까지 이 분야(무속과 개신교)를 다룬 작품으로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대표적이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궁금하다.


    '파묘'의 시놉시스는 이렇게 되어 있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나와서는 안 될 것이 나왔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이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리뷰 일부는 이렇다. “파묘는 오컬트인 척한다. 심령과 악귀, 주술, 부적이 난무하고, 주문(呪文)을 발바닥에 쓰고(王자를 손바닥에 쓰듯이) 얼굴 전체에 먹으로 글귀를 새긴다. 악령에 맞서기 위함이다. 주인공들은 무덤 안에서 뭐가 나오든 자신들은 모른 척, 이장비나 잘 챙겨서 한몫 보면 그만일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에’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상덕은 우주공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갔다가 결혼 때문에 귀국하는 딸과 후손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상덕은 풍수지리와 우주공학이 삼라만상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연관이 있는 학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런 ‘자신들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와 우주공학, 과거와 현재는 깊은 관계를 갖는다. 그건 늘 그렇다.”


    영화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파묘'에 관계된 세 가지 이야기가 시선을 끌었다. 


    첫 번째는 풍수학자 최창조의 죽음이다. 영화 개봉의 소식이 전해질 즈음에 풍수학자 최창조가 74세의 이른 나이로 지난 1월 31일 별세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풍수에 관한 영화다. 땅에 어떤 기운이 있어 그것이 화복을 관장한다는 풍수는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부터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다시말해 미신으로 치부되던 것이 땅부자들의 욕망과 맞물리면서 ‘풍수사’ ‘지관’ 등이 점쟁이나 무당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술(詐術)처럼 취급되던 것이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게 된 데는 최창조 교수의 공이 크다. 1984년에 낸 첫 책 ‘한국의 풍수사상’은 학술서이지만 수만 권이 팔리며 최창조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게다가 그것은 대우학술총서라고 하는 기획 도서에 포함되었으니 풍수가 당당하게 학문의 대열에 선 것이다. (필자의 책장에는 곳곳에 붉은 줄이 그어진 이 책이 꽂혀 있다). 전북대학교 교수로 있던 최창조는 1980년 대 후반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긴다. 풍수지리 전공자를 교수로 초빙하는 서울대의 개방적 태도와 1992년 서울대학을 떠나는 그를 보며 역시 서울대에서는 안통하는구나 정도의 기억만 나에게 남아 있었는데 이번 별세 소식에 따른 어떤 부고를 보니 그게 아니였던 것 같다.


    김두규 우석대교수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추모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988년 그가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것은 불운이었다. 갈 마음이 없었고 동료 교수들도 적극 말렸다. 왜 그 ‘선배’는 최 교수를 굳이 서울대 자기 학과로 불러들였는지 알 수 없었다. ‘선배’ 교수는 거절하는 최 교수를 압박하려고 서울 청량리에 사시던 최 교수 어머니까지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풍수 강의를 오래 하지 못했다. 정작 그를 불러들인 선배 교수부터 견제하였다. 1991년 자의 반 타의 반 학교를 그만두었다. 40대 초반 나이에 초등학교·중학교 자녀를 둔 가장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김두규의 추모기고 중에서)


    그 ‘선배’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있다가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과 주중대사를 지낸 류유익이다. 도대체 지리학자가 어떻게 비서실장과 주중대사를, 그리고 교수시절 왜 최창조를 서울대로 데려왔는지, 겨우 4년만에 사표를 내게 된 데는 어떤 내밀함이 숨어 있을까? 그 중간에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이 있다. 그렇다면 혹시 최창조의 풍수사상을 사대강과 엮기 위해서?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으니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대지가 가진 여성성(대지모 신앙),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 풍수사상은 결은 다르지만 어쨌든 땅을 경외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그것을 이용해 조선 침략의 무기로 삼았다. 또 최창조를 필요로 했던 어떤 정권은 정책의 정당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지도 모른다.


    두 번째 건국전쟁 논쟁.


    이승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은 이제 영화를 본 후 표를 가져오면 상환을 해주겠다는 단체까지 등장할 정도로 한국 우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홍보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100만을 넘었지만 억지로 끌어온 모양새가 서글프다. 마침내 감독 김덕영은 . “민족 감정을 악용하는 영화보다 대한민국을 구한 사람에 대한 영화에 눈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심지어 “이구동성으로 마치 지령이 내려온 것처럼 10개 유튜버가 동시에 똑같은 말을 하면서 건국전쟁을 보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진보진영의 배후에는 북한의 지령이 있다고 보는 현 정부의 분석과 똑같다. 


    영화표 사 줄 터이니 보라는 것이 지령이지 흥행을 목적으로 둔 오락영화가 지령으로 움직인다고 보는 감독이 만든 영화에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는가? 감독은 이어서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흥행을 위한 이른바 어그로끌기로 밖에 안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이승만이 독립에 기여했던 점은 부정할 수 없는데 고이 잠든 분을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린 감독의 행위는 이승만에 대한 파묘이며 부관참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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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미국 영화잡지 Variety는 ‘파묘’의 흥행기사를 전하면서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했다. 이어서 ‘건국전쟁’의 흥행도 눈여겨볼만한 현상이라고 소개하면서 정작 내용은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의 이야기를 다룬 2022년 박흥식 감독의 ‘탄생’ 내용을 실었다. ‘건국전쟁’은 ‘탄생’에게 의문의 1패가 아니라 확실한 완패를 당했다.


    한국 영화에 빠진 아일랜드 출신의 평론가 피어스 콘란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들이 훌륭한 이유는 훌륭하지 않은 사회 때문”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이처럼 외국 영화 평론가들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버라이어티’는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외국 평론가들이 한국 역사에 대해 상세히는 몰라도 적어도 건국(The Birth of Korea)이 현대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라가 탄생한 다큐라고 하니 그들은 서구 문명(가톨릭)을 최초로 받아들인 것을 건국이라고 오해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탄생’을 소개? 물론 억측이다. 다만 신구교 합쳐서 겨우 25% 밖에 안되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건국으로 보는 것 보다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에 3% 정도로 항상 꼴찌를 하는 이승만을 국부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김기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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