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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 향한 ‘90분 설전’… 여운은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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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국민일보| 작성일2020-08-14 | 조회조회수 : 2,0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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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라스트 세션’ 믿는 자 VS 안 믿는 자… 루이스와 프로이트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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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신구(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오른쪽)와 이상윤(CS 루이스 역)이 ‘신의 존재’를 주제로 펼치는 두 실존 인물의 가상대화를 담은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최근 열연하고 있다. 파크컴퍼니 제공

    한 사람의 세계관은 수많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결론의 집합체다. 서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가치관의 돌출된 부분을 가다듬는 게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이다. 하지만 어떤 신념과 가치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논쟁에 평행선을 그린다. ‘신의 존재’도 그중 하나다.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라 불릴 만큼 양보 없이 충돌해 온 주제를 놓고 펼쳐지는 두 실존 인물 간의 가상 대화가 202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극 ‘라스트 세션’(연출 오경택)이다.

    작품은 대표적 무신론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사색에 잠긴 채 라디오 방송을 듣는 장면으로 막을 올린다. 영국이 독일과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은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가 그의 서재를 방문해 ‘말로 하는 펜싱’ 같은 논변 경기가 시작된다.

    90분간 숨 가쁘게 진행되는 논쟁은 기쁨, 쾌락의 추구, 욕망과 고통, 사랑 등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폭격기처럼 쏟아낸다.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축은 ‘신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다. 신념을 바탕으로 한 각자의 언어가 맹렬한 토론의 무기다.

    악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는 프로이트에게 루이스는 “신이 루시퍼에게 자유의지를 줬다. 악이 있기에 선의 존재가 더 확실해진다”고 반박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인간은 알 수 없다. 다만, 신만이 아신다”고 말하는 루이스에게 프로이트는 “신을 핑계로 ‘무지’ 뒤에 숨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信)과 불신(不信)을 두고 첨예한 논쟁을 벌이다가도 불가항력적 두려움 앞에서 두 사람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다. 갑자기 들려오는 공습경보, 구강암을 앓던 프로이트에게 극심한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두 사람은 논쟁을 내려놓고 존재 그 자체로 서로를 의지한다. 논쟁의 끝자락에서 루이스가 “시대를 초월한 최대의 미스터리를 하루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푸념할 땐 프로이트가 “딱 하나 더 미친 짓이 있다. 생각을 접어버리는 것”이라며 공존의 물꼬를 튼다.

    안녕을 고하며 집을 나서는 루이스는 둘의 만남을 은유한 프로이트의 농담에 재치 있는 답을 건네며 그의 신념에 존중을 표한다. 루이스가 떠난 서재에 홀로 남아 라디오를 듣는 프로이트의 모습은 작품의 첫 장면과 같으면서 다르다. 루이스를 만나기 전 프로이트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거부하며 보도만 듣고 음악이 나오면 라디오를 꺼버렸지만, 마지막 장면 속 프로이트의 서재를 채우는 소리는 뉴스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도무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두 학자의 신념에 균열이 생겼음을 암시하는 결말은 관객에게도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 8일 공연장을 찾은 장윤미(39)씨는 “교회에 다녀본 적도, 신앙을 가져본 적도 없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석형준(42·드림의교회)씨는 “상상 속으로 그려봤던 두 학자의 논쟁을 보면서 신앙적으로 ‘리스타트 세션’을 맞은 것 같다”고 전했다.

    ‘라스트 세션은’ 지난달 10일 첫 공연 이후 월간 예매율 1위(공연예술통합전산망 기준)를 지키고 있다. 대기실에서 만난 배우 이상윤(루이스 역)은 “상업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은 작품이 대중성 높은 무대에 등장한 것도, 많은 관객이 찾아와주시는 것도 신기하고 감사하다”며 “관객들도 시대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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