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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유치장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주님” 찾는 절박한 기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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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6-28 | 조회조회수 : 1,3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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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영적위기를 돌파하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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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양감리교회 청년들이 2019년 6월 서울 광진구 교회에서 열린 ‘아프리카 청년 단기선교팀 파송식’에서 기도요청을 하고 있다.


2002년 케냐 선교사로 활동할 때였다. 교회와 장애인센터 건축을 위해 케냐와 우간다 국경지대인 부시아로 가는 도중이었다. 키수무 지역을 지나 외진 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인데 경찰차가 바짝 따라오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차를 멈췄다. “왜 나를 세우는 겁니까.” “속도를 위반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속한 일이 없었다. 비포장도로는 거칠어 과속할 수도 없었다.


케냐는 외국인을 ‘무중구’라고 부른다. 외국인이 거의 다니지 않는 지역에 외부인이 나타났으니 돈을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과속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경찰은 다짜고짜 과속했다고 우겼다.


몇 마디 하다가 할 수 없이 포기했다. “그냥 티켓을 끊어주세요.” “300달러입니다.” “예?” 300달러면 교회 현지인에게 한 달 동안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교통위반을 해도 많아야 30달러였다.


“아니, 300달러가 말이 됩니까. 그런 규정이 없다는 걸 잘 압니다. 난 선교사이기에 뇌물을 줄 수 없어요.” 그랬더니 경찰은 강압적으로 나를 경찰차에 태웠다. 키수무 근처 허름한 작은 건물로 갔다. 경찰서 같았다.


몇 명이 알아듣지 못하는 현지 언어로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겁박을 하면서 신을 벗으라고 했다. 졸지에 그 허름한 건물 유치장에 갇혔다. 앞이 캄캄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곳은 몇 개월간 갇혀 있어도 누구도 알 수 없는 외진 곳이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밖에 없었다. 주님께 절박하게 기도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상훈아, 이것이 너에게 간증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는 환상이나 음성뿐만 아니라 묵상했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를 끌고 가심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이사야 43장 2절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그 말씀에 “아멘”을 계속 외쳤다.


그래도 여전히 감정이 진정되지 않았다. 말씀을 10번 정도 반복해서 선포하니, 말씀이 내 생각과 마음을 덮으셨다. 자연히 내 안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경찰은 나의 휴대전화를 압수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전화 한 통화만 하게 해주세요.” 연거푸 부탁했는데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유치장에 앉아서 조용히 기도했다. 경찰들이 식사하러 가는지 한꺼번에 밖으로 나갔다. 대신 다른 경찰이 들어왔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경찰에게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부탁했다. “전화 한 통화만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선교사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크리스천인 것 같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그럼 빨리 전화 한 통화만 하세요. 딱 한 번만이요.”


‘아, 어렵게 기회를 얻었지만 누구에게 전화할 것인가.’ 당시 케냐 휴대전화는 연결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자동차로 6시간 이상 걸리는 이곳까지 아내가 온다는 것은 위험했다. 더구나 아내는 케냐 운전면허도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주님, 주님”만 계속 반복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한 통화의 전화밖에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순간 생각이 떠올랐다. 감리교 현지 감리사였다. 그러나 그 감리사도 6시간 거리에 살고, 평소에도 통화가 쉽게 되지 않던 분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하고 통화를 시도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속이 다 타들어 갔다. 10번 정도 벨이 울린 후 현지 감리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급하지만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감리사가 놀라는 분위기였다.


“내가 지금 먼 곳에 회의가 있어서 돕기 어렵습니다. 거기 위치가 도대체 어디입니까.” “키수무 지역의 경찰서 같습니다.” “키수무라고요? 최 목사님, 내가 지금 회의 때문에 키수무에 와 있어요.” 그분의 말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때 상황은 마치 서울에 사는 사람을 우연히 전남 해남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적은 경우에 해당했다. 감리사는 지인과 함께 30분 만에 내가 있는 유치장에 왔다. 감리사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리고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경찰서 간부와 감리사가 잘 아는 친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적과 같이 30분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그렇다. 하나님은 땅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당신의 자녀를 돌보신다. 절대로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는 일이 없다. 나는 그날 하나님의 주신 메시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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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목사(서울 화양감리교회)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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