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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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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4-01-29 | 조회조회수 : 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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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 엄마가 돌아가셨대” 몇 주 전, 딸아이가 가장 친한 친구 엄마의 죽음을 허망한 목소리로 알려왔습니다. 로렌은 9년 전 우리 가족이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회에서 만나 딸아이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웃에 살던 로렌과 딸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가까워졌습니다. 아침에는 우리집에서 두 아이를 학교까지 태워줬고, 집에 올 때는 로렌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로렌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로렌의 가족이 멀리 이사를 갔습니다. 로렌의 부모가 일하는 마켓이 토팽가이기에 진작에 이사를 해야 했는데, 로렌이 대학 갈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그동안 로렌 부모는 토랜스에서 토팽가까지 매일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했습니다. 산타모니카를 지나 말리부로 이어지는 태평양 연안도로에서 우들랜드힐스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동네가 토팽가입니다. 


    로렌의 부모도 여느 한인 이민자들처럼 토팽가에 있는 마켓에서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 가게는 일 년 열두 달 문닫는 날이 없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도, 성탄절에도, 새해 첫날에도 그 마켓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바깥출입을 삼갈 때도 그 가게에만 가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일한 덕에 집도 장만했고, 로렌도 대학생이 되어 조금 삶의 여유를 누릴만하게 되었는데, 로렌 엄마의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술을 받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몇 번 들락거리는 사이에 손쓸 틈도 없이 로렌 엄마는 남편과 두 아이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황망하게 떠났습니다. 


    장례 예배의 집례를 부탁받았습니다. 유족들은 가족들 중심으로 조촐히 장례를 치르길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토팽가에서 가게 손님들 몇 명이 올 것 같은데,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한국어로 장례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막상 장례 예배가 시작되자 예배당은 토팽가에서 온 가게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장례 예배를 집례했지만, 한국 사람의 장례에 그렇게 많은 미국 사람이 찾아온 적은 없었습니다.


    장례 예배 중간에 혹시 고인과의 기억을 나눌 분이 있으면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와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로렌 엄마가 일하던 마켓의 손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로렌 엄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했고, 자신들을 손님이 아니라 가족으로 대해주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분들이 고마웠습니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사람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비추라’는 뜻입니다. 토팽가에서 장례 예배가 드려지는 로즈힐까지 한 시간 넘게 달려와서 평생 열심히 일만 하다 떠난 한 이민자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들에게 가족을 대신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분들 때문에 그녀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장례 예배 설교를 하면서 토팽가에서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에게 ‘토팽가’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아는 듯했지만, 대부분은 그런 질문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토팽가(Topanga)’는 태평양 연안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 높은 곳(A Place Above)’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우리가 언젠가 가야 할 곳이 바로 ‘저 높은 곳’, 곧 천국이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토팽가’라는 말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는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입니다. 토팽가가 산타모니카 산맥 중간에서 태평양 바다를 마주 보고 있기에 그런 멋진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마흔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로렌 엄마에게 토팽가는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곳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자리가 삶과 죽음이 만나는 경계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죽음으로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경계를 지나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야 마땅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신비인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걷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며 나를 비추는 사람들 사이에 난 인생길을 잘 걸어야겠습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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