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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교회력 (The Christian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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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12-26 | 조회조회수 : 5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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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력 (The Christian Year)

    (from Praise & Worship Study Bible) 번역 김영국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알려지게 한 특별한 사건들을 기념함으로써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사건들을 축하합니다. 예배의  연간행사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교회력입니다. 오래전에 발전되어온 교회력은 종교개혁의 시기 까지 예배의 중요한 핵심이었습니다. 종교개혁 때에 신교도들은 중세 후반기에 교회력에 덧붙여진 폐습으로 인하여 그 대부분을 폐기하였습니다. 신교도들은 일년의 거의 모든 날이 성인의 이름을 따서 불려져 온 사실에 대하여 항의하였습니다. 


    이 성인들과 그들의 삶과 결부된 축제에 대한 중시는 대림절과 성탄절과 주현절과 사순절과 수난주간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 행사에 있어서 그리스도 사건에 관한 더 복음적인 형태의 축제를 가려 흐려지게 하였습니다. 결국 신교도들은 교회력의 준수를 중단하였는데 그들이 로마교회의 과도한 행위의 제거를 시도하면서 그 긍정적인 면까지도 함께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개신교 가운데의 교회력에의 회귀는 초대교회의 것과 유사한 교회력인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한 사건들을 강조하는 매우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교회력을 지지합니다. 


    현대 예배학은 교회력의 중심과 원천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임을 지적해 왔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까지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새로운 때”를 시작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교회의 두 개의 주된 사건인 유월절과 오순절이 유대인의 명절 기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때의 헤아림에서는 자신들이 유대인들과 연계되지만 새로운 때의 시작을 인식함으로써 자신들을 그들과 구분하여 생각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초대 교인들은 유대인들처럼 때를 기념하였지만 그들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이제는 그들의 때를 새로운 시대의 사건들로 기념하였습니다. 


    기독교의 때(time)에 대한 개념의 고유한 특징은 다른 모든 특정한 때((kairoi)와 때의 기간 (chronoi)이 그 의미를 찾게 되는 주된 때(Kairos)입니다. 그 유일무이한 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모든 때는 하나의 중심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개념을 골로새서에서 발전시켜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며(1:16), 만물을 붙드는 분이시며(1:17), 그로 말미암아 만물을 화목케 하는 분 이심(1:20)을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역사의 우주적 중심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성취를 발견합니다. 그리스도 이후의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를 가리킴으로써 그 의미를 발견합니다. 


    중심인 그리스도로부터 세 종류의 때가 구별됩니다. 

    첫째는 성취된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성육신은 구약의 메시아적 열망의 성취를 나타냅니다. 여기 이 사건에서 구약의 일련의 중대한 역사적 순간들에 뿌리를 둔 모든 히브리적 소망은 완성 되었습니다. 예수 자신이 다음과 같이 밝힌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때 (kairos)가 도래한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둘째는 그리스도의 오심은 구원의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쓴 대로 정해진 때에 찾아 왔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마 26:18과 요 7:6절도 참조). 예수의 죽음은 죄에 대한 승리의 때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정사와 권세를 폐하여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결국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의 때를 소개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2). 


    셋째, 그리스도의 사건은 그리스도인의 기대하며 기다리는 때를 소개합니다. 이 때의 관점은 부활과 승천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 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 삷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때(딤전 6:14-15)와 마지막 심판의 때(요 5:28-30; 고전 4:5; 벧전 4:17; 계 11:18)로서 기독론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대한 기독교 개념은 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활을 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큰 것입니다. 이 역사적이며 반복될 수 없는 그리스도 사건은 모든 때에게 알려주며 의미를 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서 현재를 변화시켜 미래에 형상을 부여하는 시점에서 과거의 예수의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지금의 때를 신성화하는 것입니다. 


    초기 교회력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A.D. 57년에 쓴 바울의 고린도전서에서 발견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교인들에게 “명절을 지킬 것”을 권고합니다(고전 5:7-8). 이 언급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유월절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였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일 세기와 이 세기에 걸친 부활절의 중요성을 기술하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부활절은 기도와 금식의 시간이 선행된 일년 중 세례를 위한 주요한 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4세기까지는 완전한 교회력의 증거는 없습니다. 지면 관계상 교회력의 기원과 발전에 대하여 충분히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의 요약은 교회력의 개요와 각 부분의 기원과 의미를 간단히 언급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림절(Advent) 

    Advent라는 단어는 “도래 (coming)”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메시야의 도래를 고대할 때 그리스도의 탄생에 선행하는 기간을 뜻합니다. 그것은 교회력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대림절은 주기를 마무리짓는 수단으로서 한 해의 다른 절기 후에 제정된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크리스마스 전 4주 기간을 따랐고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가 되었습니다. 


    주현절(Epiphany)

    Epiphany라는 단어는 “출연” 혹은 “드러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탄생과 그의 세례와 그의 첫번째 이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내심을 언급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요 2:11). 주현절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1월 6일에 열렸던 이교도의 겨울축제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에집트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원래 이교도의 태양축제를 대체하기 위해 12월 25일에 기념된 크리스마스를 포함했을 것입니다. 


    4세기에 크리스마스는 대림절에 포함되었고 1월 6일에 시작되는 주현절은 동방박사들, 즉 이방세계에 대한 예수의 현현과 연관되었습니다. 주현절은 크리스마스보다 오래되었고 성육신의 온전한 목적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주현절 기간 동안의 예배에서는 예수께서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보이신 다양한 방법들이 부각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예수의 변모축일로 시선을 돌리며 끝납니다.


    사순절(Lent)

    사순절은 부활절 전의 준비기간을 의미합니다. 사순절의 기원은 세례 전의 교리문답 준비에 있습니다. 세례준비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은 일찍이 디다케(Didache, 12사도의 교훈 교리서)까지 거슬려 올라가며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교부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의 저서에서도 증언됩니다. 


    그 준비기간은 점차적으로 40이라는 숫자와 연계되었습니다. 모세는 사명을 위하여 40년을 준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을 광야를 돌아 다녔으며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회중은 교회의 예비신자들을 위한 입문수련을 온 교회의 특별한 기간으로 정하여 함께 참여합니다. 


    이 기간 동안의 성경봉독과 설교는 예수의 사역, 특히 비유와 기적에서의 그의 교훈이 언급됩니다. 예수의 반대세력과의 갈등의 증폭과 그의 죽음에의 준비가 특별히 강조됩니다. 교회는 그의 생애의 이 주요한 기간을 회상하는 가운데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합니다. 


    사순절 기간은 점차적으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수난주간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은 불분명함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그것은 5세기에 와서야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구약에 기원을 둔 참회의 상징인 재의 사용에서 유래되었고 회개를 상징하기 위하여 빠르면 2세기에 교회에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재의 적용을 위하여 사용된 문구는 창세기 3:19절에 근거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은 기도와 회개와 자기 반성과 갱신에의 헌신의 시간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 기간은 성직자가 “그리스도께서 사셨습니다!”를 외치는 부활절의 축제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부활절 이전에 교회는 예수의 마지막 주간을 재현합니다. 이 주간에 대한 특별한 배려의 흔적을 3세기에 찾아볼 수 있지만 수난주간은 4세기에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발전되었습니다. 수난주간의 본질적 특성은 예수의 생애의 마지막 사건들이 그 일어난 날과 장소와 연계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은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곳이었습니다. 예수의 마지막 날들의 바로 그 장소들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교회는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을 때 그들에게 의미있는 예배의 주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 수난절의 구조를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이 기간에 진전되었던 예배가 오늘날에도 어떤 교회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세족 목요일 예배와 성금요일 십자가 경배, 그리고 성토요일의 사용은 수난주간을 교회력에서 가장 특별한 기간의 예배로 만듭니다. 


    부활절 (Easter)  

    부활절 시즌은 기쁨과 축하의 시기입니다. 엄숙한 분위기의 사순절과 달리 부활절은 부활의 기쁨에 집중하는 때입니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부활 후의 이 날들은 진통이 아닌 평화와 기쁨의 기간을 형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금식을 하지 않고 부활의 표시로 일어서서 기도를 드린다. 이

    수련은 모든 주일에 제단에서 지켜지며 우리의 장래의 생업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알렐루야가 불려진다.”


    이 기간의 가르침은 예수의 부활 후의 나타나심과 그의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준비에 주의를 환기 시킵니다. 그 기간은 50일이 됩니다. 


    오순절 (Pentecost)

    Pentecost라는 용어는 지금은 유월절 후의 50일을 가리키는 오십을 의미하는데 그때에 유대인들은 보리추수를 끝내고 밀추수의 시작을 맞이했던 농업축제인 맥추절을 기념했습니다. 교회력에서 이 용어는 오순절과 초대교회의 시작과 연계됩니다. 교회에서의 오순절에 대한 가능한 증거는 3세기 초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와 에우세비우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4세기 후반기에 순례자 에테리아(Etheria)에 의해 전해진 예루살렘에서 거행됐던 오순절에 대한 자료가 더 추정될 수 있습니다. 예배학자 A.A. McArthur는 그 행사를 이와 같이 서술합니다. 


    정오가 막 지나자 사람들이 오래전 예수께서 승천한 장소에 세워진 교회에

    모였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승천에 관한 구절이 낭독되었다. 큰 촛불 행렬이

    어둠 속의 도시에 이르렀다. 결국 자정 쯤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귀가하였다. 


    오순절은 27내지 28번의 주일에 걸쳐서 대림절까지 이어지는 교회의 가장 긴 절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의 설교는 사도들의 사역에 역사한 성령의 능력과 신약문헌의 집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초대 교회의 발전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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