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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추억속의 장소 미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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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추억이 얽힌 장소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경기도 용인시 미리내를 떠올리게 된다. 그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서 순교자가 된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다. 내 고향 경기도 안성에서 가깝게 있지만 그곳을 처음으로 가게 된 것은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고교시절 첫 여름방학을 맞은 나는 동갑내기 외삼촌과 함께 서울에서 성남, 용인을 지나 경기도 안성까지 걸어가기로 결심 하고 새벽같이 길을 떠났다. 발에 여러 개의 물집이 집히도록 우리는 하루 종일 걸어서 해질 녘에 도착한 곳은 겨우 용인시 남단이었다. 저녁이 되어 바삐 안성시를 향하는 우리들에게 동네 사람이 가르쳐준 지름길은 미리내를 통과하는 산길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밤이 되어서야 칠흑 같은 어두운 산길을 지나게 되었다.
      무서움 속에서 바삐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재촉하였다. 땀이 범벅이 되어 산길을 걸어 나오니 갑자기 꿈결처럼 서양식 건축물이 나왔다. 그곳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김대건 신부의 묘소이었다. 거의 우리는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심스럽게 외딴 집으로 접근하여 보니 그곳에 있는 분이 고향 선배였다. 그분의 도움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시원한 미리천의 차가운 물에 목욕도 하고 모기장 속에서 편히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곳은 수녀원 경비실이었고, 우리는 그곳을 떠나면서 우리를 축복하는 원장에게 감사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교회에 다니던 몇몇 청년들과 순교유적지 역사기행을 하면서 그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 곳에서 우리는 한 수사의 안내를 통하여 김대건 신부 기념 성당에서 그의 턱뼈를 자세히 보았고, 예수님의 고난을 주제로 십자가의 길을 형상화시킨 일련의 조각상을 보았다. 옛날 그저 몇 시간 묶어간 장소가 그렇게 신앙적인 차원에서 의미 깊은 장소인지는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곳은 이미 교황이 다녀간 세계적인 유명장소가 되었다. 대지는 넓게 정리되었고 건물은 확충되었다.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남터에서 순교의 칼을 맞고 죽은 시체를 거두어 이빈첸시오라는 청년이 밤으로 들쳐 메고 며칠간을 내려와서 시체를 안장한 곳이 바로 미리내였다고 한다. 그 순교자가 묻힌 곳에 신앙 안에서 청빈, 순결, 그리고 순종을 생활화한 수도원이 세워졌고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곳에 새겨진 글은 신앙 안에서 더욱 새로웠다. “너희는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님은 가시고 진리는 왔습니다.”
      수년 전 나는 또 다른 10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거기에는 오래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거대한 돌 기념비가 또 다시 세워지고 실버타운과 고아를 위한 보육원 터전과 거대한 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어진 그곳에 이처럼 거대한 기념물이 들어서는 것보다는 고아와 노인을 돌보려는 시설물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갓을 쓴 김대건 신부의 소박한 동상을 보면서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그 신앙을 묵상하였다. 헌종 임금은 그가 너무도 출중하고 총명한지라 신앙을 버리기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다고 한다. 그는 간단히 거절하고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를 위하여 목을 길게 빼주었다고 전해진다. 자신을 보고 눈물을 삼키는 여신도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곳에는 이제 새롭게 예수님의 일생을 수십 미터의 거석으로 형상화시켰다. 탄생에서 승천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인 고도의 조각품이 수백 미터에 걸쳐 늘어서 있다. 고난주간이 가까이 온 지금, 미리내의 십자가의 길이 더욱 생각난다. 예수님의 수난 당하는 모습을 묵상할 때, 무릎을 꿇고 기어서 걸어간다 해도 다 갚을 수 없는 주님의 큰 사랑이 되살아난다.
      신앙이 희미할 때, 나는 그곳에서 하루 저녁을 편히 먹고 쉴 수 있었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나면서 다시 찾은 그 장소는 순교자 김대건 신부의 높은 신앙의 향기와 길게 드리워진 아름다운 사랑의 그림자로 나를 덮고 있었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미리내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장소이다.

    작성일: 2003/4/12(토)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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