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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판단의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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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의 관습 



    “나를 위해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대신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이만한 글이면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 일면을 관찰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피포도엽서 글을 읽고 감옥에 있는 강승규 님이 보내온 ‘시와 그림’에 들어있는 글귀입니다. 그래서일까, 감옥이라는 특수적 상황과 재소자라는 인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정보가 없었다면 위 문장은 문학과 철학 사이를 지나는 꽤 괜찮은 작가의 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정확한 정보가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거부하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필자는 그것을 ‘판단의 관습’이라고 이름 지을 것입니다. “상대가 그럴 것(정보)이기에 그럴 것(결정)이다.”는 자의적 판단기준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강승규 님이 말하는 ‘동정’이라는 단어는 감옥과 재소자라는 정보로 인해 그의 불행을 가엾게 여겨 온정을 베풀고 싶어하는 마음의 설정에 주의를 요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속 제자를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판단의 관습’으로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정보에 항거하다가 로마병정의 귀를 자른 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의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그 많던 제자들이 구속을 완성하는 십자가 도상에서 사라진 것도 판단의 관습적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대신,”


    이것은 판단의 관습을 뛰어넘는 수준 높은 관찰을 요구합니다. 판단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것과 일치합니다. 판단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강승규 님은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이해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동정’의 단계에서 ‘이해’의 수준으로 변화입니다. 여기서 ‘이해’란 사리를 분별(깨달아 알아들음)하여 해석의 단계까지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느끼는 것을 이해만 했어도 베드로는 로마병정의 귀를 자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느끼는 것을 이해만 했어도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정상에 오르는 그 길에 동참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해’한다는 것은 ‘판단의 관습’을 파괴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리아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일정 가운데 수요일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센병 시몬의 집에 예수님이 초대되어 만찬이 무르익을 즈음 초대받지 않은 마리아가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던 제자들의 계산은 그 향유를 값으로 환산하여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 ‘좋은 일’로 평가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과정에서 드러난 그리스도가 느끼는 모든 것을 미리 이해한 사람은 마리아였습니다. 바로 그 일이 잊히지 않는 영원성에 기초한 하나님 기억에서 출발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Truly I tell you, wherever the gospel is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함께 있어도 판단의 관습으로 인해 동정적 시각의 신앙수준에 머물렀던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완성을 미리 준비하며 이해했던 마리아와 같은 여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믿음을 말할 때 정확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판단의 관습으로 인한 실패보다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를 강조했습니다. 그 믿음이 소중하다고 거듭 강조해서 기록했습니다(히 1:3).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어쩌면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구속의 절박한 심정일지 모릅니다. 결국 이해는 판단의 관습을 벗고 하나님 뜻대로 완성되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값을 지불한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sola gratia)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그 은혜로 흘리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되어야 할 이유가 태산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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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www.epipo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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