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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모 목사의 신학사색] 내 마음의 큰 바위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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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0-10-09 | 조회조회수 : 7,6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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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피터슨과 옥한흠 목사님에 대한 想念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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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https://namu.wiki/w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안 온다. 낮에 아내와 다툼 때문인지, 토니 목사님과 은혜의 시간 때문인지, 교통사고로 폐차시킨 막내 때문인지, 예측할 수 없는 미 대선 정국 때문인지, 보름 후에 있는 위내시경 검사 때문인지, 그렇다고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깊은 가을 밤이지만,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경건 서적을 읽고 또한 잠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본다.


    얼마 전 읽은 기사 중 50대들이 생각하는 노년은 60대가 아니라 70대이라고 했다. 자신의 나이가 사각사각 먹어 들어가기에 어쩌면 노인 시기를 멀리하고 싶은 심리일까? 나 또한 60대 중반에 접어 들면서 생각들이 이만저만 많은 것 같다. 지난날의 미련에 몰두하는 과거 집착형으로 문득 살아가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문득 고 유진 피터슨 목사님과 고 옥한흠 목사님의 삶이 생각났다. 아래층 서고에 들어가 그분들의 책을 잠시 뽑아 펼쳐 보았다.


    작가, 목회자 그리고 영성가의 삶을 살다가 2년 전, 2018년 10월 22일에 소천한 유진 피더슨의 《부활에 살다》, 《사무엘서 강해》를 펴쳐 읽어 보았다.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새로 접하는 글같이 기억이 아물거리고 잘 나지 않는다. 지난번 읽은 때, 되새김없이 건성으로 읽은 탓일까? 이제 기억력이 감퇴한 탓일까?.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 그가 남긴 마지막 말들을 투영하고 싶어 읽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 인생을 거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리고 그는 “어서 가자”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며, 천국을 준비하며 삶의 모습을 드리운 그의 말이 감동을 주고 도전을 준다. 하늘의 것을 생각지 않고 땅의 것에 집착하며 살아가며 창조의 원리, 인간의 본문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삶이 부끄럽다.


    그는 자신을 “피터슨 목사”가 아니라 “유진”이라고 불러 달라 했다. 그는 늘 이웃에게 겸손하고 친밀하고 부드럽게 대하였다. 수많은 영성 관련 책을 저술한 그가 강조한 단어는 “단순한(Simple)”이었다.


    현대인의 전형적 삶의 모습인 “분주함”을 “시대의 대적(大敵)”으로 판단하고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느린 삶, 단순한 삶으로 그 유형을 바꾸며 살았다. 그는 느린 삶, 단순한 삶, 영성의 삶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삶”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예수 지향의 삶”, 이것 바로 이 세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고 그가 깨닫고 말한 대로 살아갔다.


    그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단순화해야 합니다. 흔히 ‘성공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책을 읽으라’고 주위에서 권합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책을 지금보다 적게 읽으십시오. 더 적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당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이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역시 더 많은 친구들을 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많은 일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로 채워집니다.“


    그분의 고백과 말씀을 자신에게 비추어 볼 때, 한마디로 부끄럽기만 하다. 엉터리 삶을 살아온 것 같다. 단순보다 복잡한 삶이었다. 예수님보다 세상이었다. 주님 앎보다 지식 앎이었다. 영성보다 신학이었다. 섬김보다 누림이었다. 종보다 주인었다. 회개보다 후회였다. 하늘보다 땅이었다. 그의 나라보다 세상 나라였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었다. 영보다 육이었다. 가치보다 흥행이었다. 삶 자체가 부끄러움이다. 지금 실망과 후회가 삶을 되돌릴 수 없다. 지금이라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깨달은 대로 성실히 살 뿐이다.


    2011년 펴낸 회고록 “유진 피터슨”(IVP)에서 그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이렇게 솔직하게 평가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우울함에, 죽음과 사막에 익숙하다. 잰과 나는 밧모섬의 목사 요한의 후원을 받으며 우울한 사막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지금까지 평생을 살았다. 다시 한번 한 신학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무덤이 있어야 부활이 있다.’ 아멘, 예.”. 그는 부활을 기리며 살았다. 그는 부활을 소망하며 오늘의 무덤 속에 기꺼이 그리고 부끄럽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갔다.


    나는 왠지 유진 피터슨과 함께 생각나는 분이 있다. 늘 형님과 동생처럼 대하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이시다. 가끔 뵐 때마다 다정다감한 농담조로 격려를 주시고 조언을 주셨다. 그분의 장례식 때, 고 하용조 목사님이 남기신 조사이다. 그것은 나에게 진한 감동으로 가슴에 묻혔다.그리고 나 또한 총회 일, 노회 일을 섬기면서 교회 임직식 혹은 목사 위임식 설교 때 인용했다.


    “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소리 없는 큰바위 얼굴. 목회자들의 영원한 멘토였다. 그 빈자리 너무 크다. 우리 곁에 계실 땐 몰랐는데 천국에 가셨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숨이 멈추는 듯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목사님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무실과 서재는 항상 정리 정돈돼 있었다. 그분의 설교는 복음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강대상 위와 삶이 항상 일치했던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당장이라도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갈 신부 같았다. 형님처럼 든든했다. 병 중에도 그분이 숨 쉬고 살아계신 것 자체로 든든했다.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요 의미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차례다. 우리가 그분의 바통을 이어받아 목사님의 인격과 삶 기억하며 뛰어갈 것이다. 목사님을 보내는 지금 목메어 기도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하셨다”.


    자신과 한국교회를 되돌아 본다. 투영과 상념을 해본다. 옥한흠 목사님을 이용해도 옥한흠 목사님의 삶은 없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와 책은 인용해도 옥한흠 목사님의 영성은 없다. 옥한흠 목사의 열매를 따먹어도 옥한흠 목사의 씨앗은 뿌리지 않는다. 고 옥한흠 목사님을 추모했던 하용조 목사님도 또한 옥한흠 목사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터 위에서 누리는 자는 있어도 그들의 영성으로 지어가는 자는 없다. 그들의 눈물과 땀으로 세워놓은 한국교회를 허무는 자는 많아도 세우는 자는 없다. 나 또한 허물 자의 반열에 있었다. 한국 교회 역사에 새길 영적 큰 바위 얼굴이 누굴까? 아니면 그나마 새겨진 큰 바울 얼굴에 검은 색 먹칠을 할 자가 누굴까?


    두 분의 목사님의 삶을 조명하노라면 마음이 밝아지기보다 어두워진다. 이 시대의 고통은 코로나가 아니다. 이 시대의 치명적 폐렴은 영의 호흡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아픔은 코로나의 병리적 대유행과 감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심령의 지성소에 침투된 죄악의 바이러스이다.


    “ 오, 주님 저의 영혼에 감염된 죄악의 병균을 보혈의 능력과 회개의 씻음으로 도말하게 하소서, '내 마음에 새겨질 나의 영적 큰 바위의 얼굴은 누굴까?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주님 도우소서, 성령님 깨우쳐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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