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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피림: 창조부터 대환란에 걸친 사탄의 씨-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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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USA| 작성일2024-01-10 | 조회조회수 : 1,5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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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수잔 린 슈미트(Susan Lynn Schmidt, M.B.S. M.A.) 교수가 2016년에 발표한 “The Nephilim: Satan’s Seed from Creation to the Great Tribulation- Transjordan and Golan as Their Habitation"라는 논문을 번역, 정리하고, 나누어서 게재하고자 한다. 수잔은 예루살렘 대학교를 졸업하고 히브리어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성지 대학교와 이스라엘의 마스터스 대학교 IBEX 캠퍼스에서 강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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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가몬 제단

     

    주님께서는 왜 이 제단을 “사탄의 보좌”와 “사탄의 처소”로 묘사하셨는가? 그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본 논문에서는 그 이유가 이전에 네피림과 그 후손들이 논의한 기간토마키와 사탄의 자손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제안한다. 사람들은 이 제단에서 자이언토마키의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왔다. 안디바라는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미국 정교회와 세르비아 정교회(Nikolai Velimirovic 주교, The Prologue from Ochrid, by - Lazarica Press – Birmingham, 1985.)는 나사렛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 대한 이 참혹한 박해 기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전 제사장들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배척했다. 안디바는 백성들을 그들의 조상 신들로부터 돌아서게 하기 시작하여 그 대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요구했다. 이교도 제사장들은 그들의 신은 옛적부터 존재한 반면 그리스도는 옛적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분노한 사제들은 안티파스를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끌고 가서 그를 붉게 달군 구리 황소에 던졌고, 그곳에서 보통 그들은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 제단에서는 신비술과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런데 고대에는 제단이 많았는데, 이 제단은 왜 그렇게 다를까? ... 신성한 신비주의 물건에는 악마적인 애착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이러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을 금지하셨다. 그것들은 가증한 것이었다.(신 7:25-27.)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우상이든 건물이든 이것들은 가증한 것이었다. 박물관과 고고학의 세계에서는 신비주의 관습에 비추어 고대 유물을 보존하는 것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Kelly Fath, 2015.) 수세기에 걸쳐 페르가몬 제단을 지배했던 각 도시 국가나 제국은 강력해졌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지도자들은 권력과 거대종족(Gigantomachy)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 헬레니즘 시대 c. 기원전 2세기, 에우메네스 2세는 버가모를 도시 국가로 정점에 이르게 했다.


    · 옥타비아누스(기원전 31년)는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되었으며, 페르가몬 제단을 동방 최초의 제국 숭배 중심지로 지정했다.(Tacitus Annals.)


    · 비잔틴은 동방 교회의 주요 제국이 되었다. 제단은 그 기능을 상실했지만 아랍인에 맞서 강력하게 요새화되었다.


    · 아랍인/오스만 제국은 비잔틴 제국을 물리치고 12~13세기에 강력한 지배 세력이 되었다. 그 후 19세기 중반까지 터키인들이 통치했다.


    · 비스마르크 제2제국의 독일군은 제단을 철거하고 베를린에 재건했다. 독일 엔지니어인 Carl Humann(1878)은 제단을 하나씩 가져와 이를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건축되고 명명된 박물관에 보관했다. 카이저 빌헬름(Kaiser Wilhelm)은 이것이 독일 민족의 명성을 높여 대영 박물관과 그들의 제국을 모방하기를 원했다.


    · 나치 독일과 제3제국 치하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1930년에 박물관이 완공되었을 때 페르가몬 제단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는 건축가인 앨버트 스피어(Albert Speer)에게 유사한 구조인 제플린 필드에 트리뷴을 건설하도록 의뢰했다. 야간 집회. 총통의 설교단은 이 인상적인 구조물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앨버트 스피어는 히틀러의 건축가가 되었다.


    · 나치가 패배한 후 소련은 전후 독일 베를린 장벽 동쪽에 있는 페르가몬 제단을 장악했다. 미국과의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붉은 군대는 프리즈를 해체하여 러시아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했다. 소련은 여전히 ​​소련의 통제하에 있던 1958년에 프리즈를 동베를린에 반환했다. 1990년대 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다시 한번 통일된 독일은 ​​유럽 상업과 정책의 영향력 있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선두 주자인 버락 오바마는 베를린 나치의 상징인 알렉산더 승리 기둥(2008년 7월 24일)에서 약 20만 명의 독일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베를린 집회에 갔다. 미국으로 돌아온 오바마 상원의원은 덴버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2008년 8월 28일) 그의 단상은 페르가몬 제단 형태였다. 그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두 번의 임기를 마쳤다.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의 동기는 뉘른베르크 재판 후 로버트 립턴(Robert Lipton)과 앨버트 스피어(Albert Speer)의 인터뷰로 요약할 수 있다.


    “그(Speer)는 전능한 나치 정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총통을 찬양하기 위해 거대한 건물, 심지어 도시까지 계획하는 일을 진행했다. 그는 "히틀러의 건축가"가 되면서 개인의 불멸화, "미래의 역사책에 자리를 잡다", "영원한 건물",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삶에서 살아남는 사람"이라는 비전에 이끌렸다고 강조했다.(Robert J. Lifton, 극한 세기의 증인 - 앨버트 스피어와의 인터뷰.)


    요약하면, 거대종족과 그들이 밝혀낸 이야기는 고대를 거쳐 현재까지 보존되어 왔다. 이에 대한 예는 페르가몬 제단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페르가몬 제단을 사탄의 보좌로 정죄하셨다. 이는 기간토마키가 사탄의 씨앗 및 마법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는 이 문서의 앞부분에서 논의한 네피림과 거인(르바임)과의 유사점을 입증하는 신뢰성을 제공한다. 위대함과 전능함의 사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폭력과 파괴를 통해 제국 문화를 확장하기 위한 상징으로 페르가몬 제단을 사용해 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히틀러가 유럽의 유대인을 몰살한 일이었지만, 이는 메시아를 낳은 그 나라의 “발꿈치를 상하게”한 것뿐이었다(창 3:15).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강력한 도시”로 명성을 얻으려는 니므롯의 열망처럼 “고대의 영웅들”과 유사점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 본문, 특히 요한계시록 2:12-13에 따르면, 이는 사탄의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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