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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모 교수의 리바이벌 & 힐링 메시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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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준모 교수| 작성일2022-01-25 | 조회조회수 : 4,0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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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관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난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마음에 일어나는 바르지 못한 감정과 정서를 가라앉힐 수 있어야 한다. 당면한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난의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고난이 임하는 원인과 대처 방안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신앙적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의 앞길에 고난의 풍랑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인간의 대항은 허사이다.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당면하는 고난은 서서히 올 수 있고 갑자기 돌풍처럼 밀어닥칠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고통이 부분적으로 임할 수 있고 총체적으로 닥칠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고난이 영적이거나 육적일 수 있고, 또한 영육간 모두 임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고난이 순간일 수도 있고 지속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당면한 고난이 가정, 학교, 사회, 직장, 교회 등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고난은 질병, 이별, 죽음, 폐망, 음해, 단절, 소외 등 다양하다.


    우리의 고난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일을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엡 1:11). 어떤 고난은 인생의 죄 때문에 일어나고 어떤 고난은 우리의 죄와 상관없이 당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그분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허용하실 때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긍휼을 거두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을 허용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때로는 그 마음의 강팍한 대로 버려두시기도 하시고, 고난의 한계를 정하시도 하신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일으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 1:12)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 2:6).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결코 중단하시지 않고 그 누구도 무산시키지 못한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시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10)


    고난을 시금석 삼아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셉의 억울한 누명과 감옥의 시험, 사탄의 욥 시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시험, 어리석은 부자 청년의 물질 시험 등 수많은 인생이 각자가 시마다 때마다 만나는 고통은 믿음의 진실성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현장을 통해 성도들에게 선을 이루게 하시어 영광을 받으신다. 고통의 연단 끝에 그분의 선하신 목적에 합당한 좋은 결말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고난의 현장에서는 고난의 숨은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뒤돌아 볼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숨겨진 놀라운 뜻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무한하신 하나님 지혜와 능력, 섭리와 은총에 또 한 번 탄복하며 경배하게 된다. 고난은 이해할 수 없는 미래의 섭리적 사건이요, 감추어진 축복의 보고이다.


    고난 속에서 감사하는 욥의 역설적 찬양을 보게 된다. 이성의 한계를 초월한 주님이 주시는 찬양과 고백일 것이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를 아는가? 그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적 환경에 대하여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감옥, 수도원의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힘든 일과 등등 환경은 비슷하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하루하루가 불평으로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내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지적한다. 근본적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인간이 고난 속에서 감사에로 승화된 신앙은 놀랍고 고귀하고 주님의 은총의 결과임이 확실하다.


    감사의 조건을 초월하여 드리는 감사는 주께서 영광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분명한 약속을 허락하셨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온갖 고난의 가시밭길 속에서 그리스도의 위로를 체험한 사도 바울은 감사의 고백과 찬송이 넘쳐 흘렀다.


    그는 지난날 당한 고난을 불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해석하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군사였다. 그는 현재 당하는 고난을 보며 자신의 삶과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놀라운 복음의 용사였다. 그는 미래에 닥쳐올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겸손히 받아들이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복음의 사명자였다.


    주님,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갑니다. 감사드릴 뿐입니다. 감사 외 드릴 말이 없습니다. 영원한 시간에 경점(更點) 같은 인생, 그 존재 자체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존재, 저의 현재, 저의 미래가 주님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존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도록 오늘도 이끌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떤 고난, 고통, 고민, 고생스런 상황에서도 주님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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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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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준모 목사는 선교신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이다.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SM 총재,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GMS(세계선교이사회) 총재 등을 역임했다. 현재로는 현 GSM(선한목자 선교회) 고문,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뉴스파워, 좋은신문, KCMUSA 칼럼리스트,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 ≪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 등 다수가 있다. 상담 및 집회인도 연락처 719) 2484647, jmjc3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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