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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빛 가운데 빛으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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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밝히소서(시 36,5-10; 마가복음 10,46-52)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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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ann Heinrich Stöver, 「Jesus healing blind Bartimaeus」 (1861) ⓒWikipedia


    시편 36편은 악인들에 대한 진술들이 앞뒤에 나오고 오늘의 본문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마치 시의 구성을 통해 악인들이 시편 기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의 악이 악으로 곧바로 드러나지 않기에 그는 자기를 자랑하고 악을 꾀하고 악의 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권력으로 자기를 감싸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인의 존재를 위협으로 느끼고 그를 제거할 궁리만 합니다. 밤새 약자를 등쳐먹을 계획만 세우고 날이 새기 무섭게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야 하는 시편 기자의 상태가 어떠하겠습니까?


    불안과 초조가 그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자신도 삶의 방식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등등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도 싹트고 그 때문에 그는 괴로웠을 수 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그는 야훼를 기억하고, 세상을 두루 살펴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의 날개 아래 있습니다. 온 우주가 그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증거하고 그의 공의와 정의를 노래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그에게서 생명을 얻고 피난처를 발견합니다. 이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악인들조차 예외는 아닙니다.


    이로부터 시편 기자는 야훼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고 모든 존재의 근원이심을 깨닫습니다. 그의 공의와 정의는 왜곡되거나 굽어질 수 없고, 그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은 취소되거나 거둬질 수 없습니다. 악인들이 춤추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 자신의 답답한 상황은 바뀌지 않고 계속되지만, 그 상황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여전히 어둡다고 해도 그 안에 빛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태양빛이 아니라 바로 “그 빛에서 우리는 빛을 봅니다.”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세상에 빛이 있게 하신 그분의 빛은 태양이 빛을 잃어도 변함없이 빛으로 있을 것입니다. 야훼가 빛이기 때문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은 온전히 그의 빛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 빛을 본 시편 기자입니다. 그의 마음이 그의 눈이 얼마나 밝아졌을지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의 눈은 야훼를 아는 마음의 빛으로 빛날 것입니다. 더 이상 의구심은 그에게 없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자기를 가리켜 ‘야훼를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마음이 바른 자’라고 자신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빛으로 그는 세상을 볼 것입니다. 그는 악인들에게 둘러싸인 그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그의 길을 갈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야훼를 의지하며 그의 인자하심과 공의를 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달라지는 세상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주님 말씀대로 그는 세상에 야훼의 빛을 비추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은 비록 느릴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갈 것입니다.


    우리 역시 야훼의 빛에서 빛을 보고 그 빛으로 자유롭게 되고 그 빛 안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 안에 빛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그 빛을 따라 어둠 속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예전의 우리는 어둠에 시달리며 어둠 속에 앉아 빛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어둠을 비추는 빛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고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이를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며 그 빛과 함께 오늘 그 빛 안에서 살아갑니다.


    바디매오는 시편 기자와는 또 다른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들었지만 예수를 만날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수의 소식은 그에게 빛을 가져왔습니다. 그에게서 맹인 바디매오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그가 사는 동리에 오셨습니다. 마을이 시끌시끌해졌습니다. 바디매오는 그 틈에서 예수란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부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외치는 소리입니다. 평시 같으면 사람들은 아마도 그 소리에 그를 동정하고 그에게 무엇이라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에게 조용하라며 꾸짖는 소리를 할 뿐입니다. 예수가 방해받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은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더 크게 소리 지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소리에 예수가 발길을 멈추고 그를 부르라 하십니다. 사람들은 미안한 듯 바디매오에게 그가 부르신다고 일러줍니다. 예수의 말씀에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된 바디매오는 겉옷도 내버려둔 채 뛰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 바디매오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으로 빛나는 환한 얼굴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그 자체가 그에게 희망이었습니다. 예수가 그에게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보기 원합니다. 그가 대답합니다.


    이 짤막한 순간의 대화가 바디매오의 일생을 바꿉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 말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둡던 눈이 열렸습니다.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예수가 있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예수를 따릅니다. 예수는 그에게 가라고 했지만 빛과 함께 하는 바디매오입니다. 그는 끝까지 빛 가운데 빛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것은 구원 사건의 한 측면입니다. 구원은 예수 사건임에도 예수는 그 사건을 바디매오의 관점에서 말씀하십니다. 무시를 당하거나 동정으로 살아야 했던 바디매오를 예수는 그렇게 높여주셨습니다. 그는 한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빛의 사건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빛의 사건입니다. 야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서 빛을 보는 사건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 빛을 발하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어둠을 볼 수 있게 하고 어둠 속에 있을 수 없게 하고 어둠과 함께 할 수 없게 합니다. 빛 가운데 빛으로 사는 우리이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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