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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복음서의 제사장 없는 십일조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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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복음서와 성전 및 제사장



    Q복음서에서 십일조의 실행 여부는 Q복음서가 제사장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이다. Q복음서의 예수는 Q11:42에서 십일조의 실행을 승인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다.

    Q11:42 너희 바리새인들에게 화로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공의와 자비와 믿음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다른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것들을 행했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 Q복음서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공의와 자비와 믿음을 버린 바리새인을 비판하면서도 십일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Q복음서를 이방 기독교의 지평에서만 해독하려고 하는 플레더만은 이 본문에서 주석의 어려움을 느낀다. 그는 ‘Q공동체는 실제로 십일조를 했는가? 라는’ 물음에는 답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한다.(1)

    Q11:42와 39b 및 41을 연구한 하르프(G. Harb)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전한 화의 말씀이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유죄판결이기는 하지만 율법에 대한 유죄판결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대답한다.(2) 필자는 Q 사람들이 십일조를 했으며 성전의 체제를 기본적으로 인정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Q11:42의 “그러나 너는 다른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서 이것들을 행했어야 한다”는 구절이다. 한규삼은 Q11:42의 십일조가 예루살렘 성전에 보내지지 않고 Q 자체적인 종교 체계를 위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3) 이러한 추정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추정은 Q공동체의 체계(System)를 지나치게 발달된 성직 체계로 보려는 경향을 오히려 보이고 있다. 한규삼이 Q11:42를 Q의 최종편집층으로 보려고 하는 시도도 이러한 해석과 맞물린다. 이 구절이 Q의 편집적 층위에 속한다는 것이 대체적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Q의 편집층이 발달된 성직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십일조를 부과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Q복음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떠돌이 예언자들(Wanderpropheten), 지역 동조자 그룹(Sympathisanten-Gruppe), 그리고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Die soziale Diskriminierten)로 구성되어 있다.(4) 떠돌이 예언자들은 십일조가 아니라 지역동조자들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식탁교제를 함께 했다(Q10:7). Q공동체의 실행에서는 한규삼이 가정하는 것과 같은 제사장적-십일조적 실행으로 추정할만한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

    Q11:42d가 양식적으로 이질적이며, 편집적 층위의 특성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메시지는 Q공동체에서 마태 공동체로 이어지는 Q공동체의 면면한 흐름에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Q복음서와 마태복음서 사이에 있다고 여겨지는 Q의 개정판인 소위 말하는 Qmt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은 파괴되지 않고 이어진다. 코쉬(D. Kosch)는 Q의 전승단계와 편집단계의 구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는 Q가 전승단계에서도 율법에 대해서 파괴적이지 않고 오히려 율법을 종말론적으로 급진화했으며, 편집 단계에서 예수와 율법의 일치가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와의 갈등이 율법과의 갈등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5)

    Q11:42와 Q16:17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Q복음서가 율법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알 수 있다. Q복음서는 율법의 작은 것도 경시하지 않는다. 율법의 작은 조항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Q복음서는 철저한, 과도하게 철저한 율법주의 공동체였다. 이점에서 Q복음서의 율법정신은 바리새인의 율법정신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

    Q복음서는 바리새인을 능가한다. 바리새인은 율법의 규정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지키는 것을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Q복음서는 그것을 넘어서서 율법의 정신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런 Q복음서의 길은 토라의 급진화의 길이며, 초-율법주의의 길이다.

    Q복음서가 성전에 내는 십일조를 승인했다면, 그것은 Q복음서가 제사장 제도를 승인했음을 의미한다. Q복음서는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내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Q공동체 내부에 제사장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Q공동체가 오히려 유대교 내부에 있었다. 제사장은 유대교 체계 내부에 있었지만 Q공동체의 외부에 있었다. 제사 제도와 제사장이 부정된 것은 아니지만 제사장과 관련된 율법의 조항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는 않았다. Q공동체에는 예언자와 현자가 더 중요했고, 공동체 내부에서 제사장은 별반 중요하지 않았다.

    미주

    (미주 1) H. T. Fleddermann, Q: A Reconstruction and Commentary (Leuven, Paris, Dudley, MA: Peeters, 2005), 557.
    (미주 2) G. Harb, “Die ersten beiden Weherufe gegen die Pharisäer in der Logienquelle(Q11,42.39b.41),” Hrsg. M. Tiwald, Kein Jota wird vergehen: Das Gesetzverständnis der Logienquelle vor dem Hintergrund Frühjudischer Theologie (Stuttgart: Verlag W. Kohlhammer, 2013), 159-161.
    (미주 3) Kyu Sam Han, Jerusalem and the Early Jesus Movement: The Q Community’s Attitude toward the Temple (London: Sheffield Academic Press, 2002), 213.
    (미주 4) Myung-Soo, K. Die Trägergruppe von Q Sozialgeschichte Forschung zur Q Überlieferung in den synoptischen Evangelien(Hamburg: Verlag an der Lottbek, 1990), 362-363.
    (미주 5) D. Kosch, Die eschatologische Tora des Menschensohnes: Untersuchugnen zur Rezeption der Stellung Jesu zur Tora in Q(Göttingen: Universitätsverlag Freiburg Schweiz, 1989), 450-465.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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