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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⒃] 회개와 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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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뉴스| 작성일2021-05-20 | 조회조회수 : 1,8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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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나타내는 표현 양식은 나라와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면서 용서를 청하기도 합니다. 불효에 대한 참회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묘지를 지키는 풍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것도 참회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옛 이스라엘에서는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옷을 찢고 통곡함으로써 참회의 행동을 나타냈습니다. 다윗 왕의 딸 다말이 배다른 오빠 암논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후, 쫓겨났을 때, 다말은 “머리에 재를 끼얹고, 입고 있는 색동 소매 긴 옷도 찢고,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목을 놓아 울었다.”(삼하 13,19)고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 통치기에 유대인 집단 학살을 도모한 하만의 계략을 전해들은 유대인 모르드개도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 쓴 채로 대성통곡 했습니다.”(에스더기 4,1)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행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마을들, 벳새다와 고라신을 향하여 화를 선언하신 주님의 말씀도 재를 뒤집어쓰는 것이 회개와 관계된 것임을 보여 줍니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너희 마을들에서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쓰고서, 회개하였을 것이다.”(마 11, 20-21)


유대인들의 참회 표지를 이어받아 그리스도교 안에서 형성된 전통은 먼저 수난 주간 성 목요일에 참회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어주고, 참회예복에 재를 뿌리는데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성 목요일에 참회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이 사라졌는데, 10세기, 독일 라인 강 지역 교회에서 신자들이 감각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교회의 공식 예식으로 다시 받아들인 때는 1091년 베네벤토(Benevento) 공의회였는데, 이 때 부터 ‘재의 수요일에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모두 재를 받을 것이다’고 선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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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의 수요일’은 곧 ‘회개의 날’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회개, ‘메타노이아’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동사 ‘슈브’(돌아오라)는 하나님께로 완전히 전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달음과 뉘우침, 생각만이 아니라, 몸과 행동 자체가 변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입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마음으로 뉘우치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은 잘못, 다시 저지르고, 지은 죄, 또다시 짓는 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다’는 우리말은,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는 우리 자신의 행위의 결과이고, 죄는 시간이 가면서 덧붙여진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는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신다는 것이 요엘 예언자의 선언입니다(요엘서 2,12-13).


요한의 증언도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요한1서 1,9)


용서받은 기쁨이 어떤 것인지 용서받아본 사람은 압니다. 성서는 그 기쁨을 큰 빚을 탕감(蕩減)받은 기쁨에 비유합니다. 모든 빚을 쓸어버리고, 덜어낸다는 것이지요. 빚 때문에 고통받아본 사람은 빚을 갚았을 때, 혹은 탕감 받았을 때의 해방감과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압니다. 하물며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죄를, 깊은 상처를 남긴 피해자에게서 용서 받는 기쁨이야 더 말할 수 없겠지요.


2017년 말에 개봉된 ‘신과 함께 – 죄와 벌’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다가 추락사 한, 젊은 소방대원 ‘김자홍’, 그의 영혼을 49일 동안 저승으로 안내하면서, 일곱 가지 죄에 대한 염라대왕의 재판으로부터 그를 변호하는 ‘저승 삼차사들’이 등장합니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일곱 가지의 죄들에 대한 추궁을 변호하면서 죽은 소방대원 김자홍을 환생시키려는 노력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살인죄’에 대한 추궁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귀가 멀어 듣지 못하는 장애 어머니와 두 형제, 어릴 적 김자홍은 그런 장애 어머니를 둔 것과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 싫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모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자홍은 어느 날 저녁, 주무시고 계신 어머니를 질식사 시키고, 동생과 함께 자살할 결심을 하지요.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동생의 만류로 차마 어머니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쳐 나옵니다. 그 후 고아로 살면서 성장하여 소방대원이 된 자홍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면서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저승길에서 살인죄를, 그것도 친모 살인죄를 추궁 당하게 된 것이지요. 영화는 잠시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날 밤, 주무시고 계신 어머니를 베개로 질식사 시키려고 베개를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을 때, 사실 어머니는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렇게 삶을 마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까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면서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아들 자홍을 용서했던 것이지요. 마음에 품은 살인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승에서 살인죄에 대한 처벌을 면제받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질고를 홀로 짊어진 어머니, 자신을 죽이려고 한 아들을 용서한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용서는 용서받은 사람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용서하시는 어머니, 외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고 맞아드려 품에 안은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용서로 맞아들이십니다. 


주전 4세기 초(주전 360년-350년) 활동한 예언자 요엘에 의하면, “옷을 찢고,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는 것”은 회개의 전형적인 행동 양식입니다. 물론 이런 외적인 형식보다 마음을 더 중시하는 것은 요엘이나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옷을 찢는 것보다 마음을 찢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요엘서 2,13), 이것이 진정한 회개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하면서 흉한 얼굴과 초췌해진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도 깨끗이 하고,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게 숨어서 계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게 하는 것(마 16, 16-18)이 진정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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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 자손이 같은 동기인 베냐민 자손과 전쟁을 할 때, 이스라엘 자손이 베델로 올라가 주님 앞에서 목 놓아 울면서 날이 저물도록 금식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금식을 하면서 그들이 전쟁에 임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입니다(사사기 20,26).


금식은 애도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사울과 그의 아들들과 용사들의 주검을 모두 화장하고, 그들의 뼈를 거두어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아래 묻고, 이레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을 하였습니다(삼상 31,12-13).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도 옷을 찢고 슬퍼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울며 금식했다고 합니다(삼하 1,12).


에스더는 민족의 명운이 걸린 대학살 계획을 무산시키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기도할 때, 금식하였습니다(에스더기 4,16). 금식은 단호한 결심을 끝까지 밀고가기 위해 약해질 수 있는 자신을 다잡는 행동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식이 없음을 슬퍼하여 금식하며 기도했고(삼상 1,7), 아기 예수님이 율법에 따라 제사장 시므온에게 갔을 때, 성전에 있었던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여자예언자는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고 합니다(눅 2,37). 금식과 기도는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이고도 일상적인 생활태도입니다.


금식은 또한 회개의 표징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자비심을 일깨워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백성과 함께 금식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삼상 7,5).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병에 걸려 몹시 앓게 되었을 때, 어린 아기를 살리려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금식했는데, 그것은 혹시 주님께서 그런 그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삼하 12,22).


요즘은 금식이 다이어트 방법, 몸매 만들기의 한 방식이 되기도 했지만, 금식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영혼을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의지를 강하게 하는 영적 훈련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 광야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을 금식했고(철 34,28),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마 4,2-11).


금식은 회개의 표징이자, 하나님을 감동시켜 자비를 구하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물론 회개가 꼭 금식과 병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과 몸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회개도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식과 회개가 결합될 때,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느낌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독일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금식을 살아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다시 죄를 짓고, 반복적으로 회개하게 될지라도, 회개하면서 금식하고, 금식하면서 회개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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