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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피랑 아품 교수, ‘어쨌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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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신뉴스KNC| 작성일2020-12-07 | 조회조회수 : 1,1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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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외딴 구석에서 기독교는 문화적 위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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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제공: 크리스천니티투데이


    영문판 크리스천니티투데이(christianitytoday.com)는 11월 23일 자 현재 이슈에서 인도 아피랑 아품(Apilang Apum) 교수가 인도의 전통적인 애니미즘 종교를 믿는 문화 속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의 사명을 깨닫고 기독교인으로서 성장해가는 그의 글을 실었다. 이 기사는 현지 전통적인 종교 사회 속에서 기독교가 문화적인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왜 받아들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역자 주)


    인도에서 자라면서 나는 결국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인도의 먼 북동쪽에 위치하는 아루나 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주에 있는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아디 부족(Adi tribe)에 속한다. 우리 가족은 우리 문화에서 인기 있는 전통적인 애니미즘 종교를 실천했다.


    나는 나 자신이 모든 종교를 믿는 ‘옴니스트’라고 생각했다. 어떤 수준에서는 기독교도 포함됐다. 개종하기 전에 나는 때때로 친구들의 초청으로 교회 예배에 갔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휴일을 축하했다. 나는 또 자주 ‘기드온 신약 성경’을 읽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힌두 신, 부처,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모든 신의 우상을 믿었다. 그리고 나는 힌두 사원, 불교 수도원, 갱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디 사람들은 도니 폴로(Donyi-Polo)라는 신에게 기도했다(아디 언어로 도니(donyi)는 태양을 의미하고, 폴로(polo)는 달을 의미하고 있다).


    지옥의 두려움


    2008년에 한 친구가 인도 복음주의 학생 연합 (Union of Evangelical Students of India) 산하 조직인 ‘자와할랄 네루 복음주의 연합’(Jawaharlal Nehru Evangelical Union)이 주관하는 전도 청소년 캠프에 나를 초대했다. 캠프에서 배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강사 중 한 사람에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천국에서 장소를 찾을 수 있는지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에 성경 일부를 읽은 사람으로서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을 심판의 마지막 날에 지옥에 던지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불같은 곳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게 두려웠다. 그 형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 힘입어 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나고 나니까 성경과 기독교 전반에 대한 저의 천박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어떻게 나를 진리로 인도하셨는지 알 수 있다.


    아루나 찰 프라데시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서구 종교로 인식하므로 토착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 개종자들은 그들의 문화유산의 상당 부분을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종종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른다. 그러나 개종은 또한 지역 사회의 구조에 촘촘하게 짜인 특정 의식을 포기하는 것을 포함하며, 일부는 ‘부족’ 문화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간주하고 있다. 나의 고향에는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인도 전통 표현을 홍보, 보존 및 후원하기 위해 주로 존재하는 아루나 찰 프라데시 ‘원주민 신앙 문화 협회’라는 공식 등록 조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제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특히 제 가족의 첫 번째 개종자로 예수님을 받아들였다고 부모님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했다. 이 소식이 그들을 불행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나의 믿음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녔지만, 집에 돌아올 때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들의 앞에서 신앙을 실천할 용기가 없어서다. 사실 발각될까 두려워서 개종한 지 4년이 될 때까지 침례 받기를 미루게 됐다.


    2013년 2월, 두 달 병에 걸린 후 큰 심장 수술을 받을 때 전환점이 찾아왔다. 의사들은 내가 류마티스성 심장병 진단을 받았을 때 훨씬 일찍 시술을 권장했지만, 아버지는 너무 긴장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2013년까지 우리 둘 다 내가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부모님과 친척들은 기독교 공동체가 제공하는 사랑과 보살핌을 직접 봤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와 믿는 친구들은 나를 재정적으로 도왔다. 이것은 기독교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부모의 관심을 끌었다. 나의 어머니는 저의 건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10년 넘게 수행해 온 전통 의식을 그만두셨다. 부모님 중 누구도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충돌하는 세계관으로 인해 약간의 긴장감이 남아있었을지라도 더는 나의 개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2015년에 그리스도를 모르고 돌아가셨다.)


    이 병의 기간 하나님은 내가 목적 있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도와주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지라는 것을 알았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이기심에서 멀어지게 했고, 종교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동기를 가진 사람으로 나를 만들었다. 우리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 성경의 두 번째 위대한 계명 인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길이 됐다 (막 12:31).


    성숙기에 성장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한 후, 나는 믿는 학생들이 교회와 더 넓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캠퍼스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역인 ‘인도 복음주의 학생 연합(UESI)’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UESI에서 조직한 많은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그러나 2015년까지 ‘North Delhi Evangelical Graduate Fellowship’에서 주최한 ‘집중 여름 연구’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내 인생은 또 다른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신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지속적인 독서 습관을 개발하는 형태를 취했다. 문해력이 강한 문화가 부족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것은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기독교인처럼 생각하는 습관을 배우고 싶었다. 성경을 공부할수록 기독교인이 되는 주된 이유는 죽을 때 단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성장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나는 이스라엘의 길고 중요한 이야기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영원한 통치를 가리키고 있다.


    한편 나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학부 대학 강의실에서 교육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나는 나의 일을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학위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연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과 그의 영광을 위해 태양 아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확신은 나의 신앙과 학계를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나는 세상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고 가르치는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공부에 전념해야 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의 경험을 생각할 때, 나는 항상 제 삶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놀랐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운전사이고 믿는 공동체가 그의 승객이 되는 여정이다. 믿음직한 멘토가 없었다면 내가 출석하는 교회와 기독교 친구들 사이에서 내 믿음은 얕고 자기중심적이었을 것이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었지만, 이 울퉁불퉁한 길을 타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은 내가 넘어질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신다. 오늘 나의 사명은 교실 안팎에서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시는 것처럼 세상을 돌보는 것이다.


    * 아피랑 아품(Apilang Apum)은 인도 로잉(Roing)에 있는 Jomin Tayeng Government Model Degree College(조민 타옝 정부 모델 학위 대학)의 경제학 조교수이다.


    (기사 출처 : 크리스천니티투데이)


    이국희 기자 cookie0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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