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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 박순경 선생님이 되뇌이신 두 마디, “잘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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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큐메니안| 작성일2020-10-27 | 조회조회수 : 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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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原草) 박순경 선생님 하늘 가시는 길을 추모하며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여신협 사회연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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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초 박순경 교수님 추모사를 진행하고 있는 필자 ⓒ이은선 교수 SNS



1. 어제 새벽 6시 58분 김애영 선생님의 “조금 전 눈물을 흘리심. 호흡도 아주 약해지고!”라는 카톡 메시지를 접한 후 마음을 함께 모으고 있는 가운데, 오전 9:00 ‘운명하셨다’는 전언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늘길 여행을 떠나신 선생님! 지금 어디쯤 가고 계신가요? 原草 박순경 선생님! 선생님의 원래 호(원초: 본디 풀)대로 이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과 후회를 훌훌 털고서 잘 가고 계신 것이지요? 그런데 어제 저녁 다시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식구들의 조촐한 추모 예배에서 선생님 마지막 날들의 언어가 “잘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였다는 것을 듣고 또 다시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우리가 이생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갈 적에 이 두 마디 외에 어떤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2. 그렇게 선생님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조직신학자와 통일운동가, 아름다운 여성, 인간, 선생님으로 사시면서 항상 원초적으로 ‘근본’을 생각하셨고, 그래서 무슨 일에서든지 ‘기초’와 ‘토대’를 놓는 일에 힘을 쓰셨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통일 일을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일로 생각하셨고, 그 일을 위해 2014년 92세의 연세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 (신앙과 지성사, 2014)을 내놓으셨으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제2권 『신약편』을 마무리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어서 제3권 『성령편』 은  다음 세대의 일로서 다시 그 앞서 놓인 기초를 해체하고,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선생님의 사랑하는 제자 김애영 선생에게 남겨놓으셨다지요.


3. 선생님이 나중에 “어머니”라고도 불렀다는 그 제자 김애영 선생은 오늘 우리 시대에 모든 ‘집’이 해체되고,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을 자기 집에서 맞지 못하고 밖에서 떠돌아야 할 때 선생님을 바로 ‘집’에서 마중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김애영 선생이 쏟았을 눈물과 정성과 수고를 보시고, 바로 선생님이 선생님 신학에서 처음에 행했던 구분과 분리와 이분을 하나로 통합하고, 화합하고, 화해시키기 위해 가져오신 ‘어머니’라는 언술로 그녀를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은 개신교 신학자이시면서도 가톨릭 전통의 ‘성모 마리아’의 상을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언어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을 넘어서고자 했고, 남성과 여성, 교회 밖과 교회 안, 세상과 몸의 일을 신앙과 교회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낳고 살리는 성령의 일과 다르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떻게든 우리 ‘민족’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보면서, 그 일의 온전한 이룸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그 일이 바로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었고, 남북의 화해였으며, 오랜 시간 동안 자주적으로 살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몰라 좋은 것이 항상 밖에서만 오는 줄 알고서 서로 싸우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오랜 피식민지성, 분단과 자기학대와 민중 억압의 병을 치유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4. 1991년 8월 13일,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일과 1991년 2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 회의에서의 주제강연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선생님은 당시 68세의 정년 퇴임 교수셨습니다. 일찍이 진정한 기독자라면 사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언표했던 칼 바르트 신학과 더불어 학문 연구를 시작하신 선생님은 특히 자신의 조국 한반도가 20세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갈등의 첨예한 격전장이 된 현실을 어떻게든 풀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 숙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평생을 바쳤고, 그 가운데서 떠올랐던 모든 화두, 즉 민족, 하나님, 자주, 주체, 독립, 여성, 민중, 교회, 부활, 어머니 등의 언어가 선생님 사유의 길라잡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통합적이고, 불이적(不二的)이며, 어떻게든 한국 고유의 사상과 역사, 고난의 현장과 접목하려고 고투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앞의 구속과 법정 투쟁 과정의 기록물인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한울, 1992)는 앞으로의 한반도 통일 운동 과정에서 이정표와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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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초 박순경 교수 장례는 통일사회장으로 치뤄졌다.



5. 그런데 그런 모든 성찰과 과정을 저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 되뇌셨다는 두 언어, “잘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로 모두 정리하고 마무리하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촛불 혁명의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한껏 부풀었던 남북 하나됨의 꿈이 다시 매우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서 남북이 이제 다시 만난다면 서로 나눌 첫 마디로, “잘못했습니다”, 이 이상의 어떤 것이 더 있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의 자신들 고집과 자기 중심주의, 편파적 주장과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분노를 서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그러한 시작의 언어인 ‘잘못했습니다’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다음의 언어로 그동안 서로 정말 어려운 처지에서, 그래도 더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각자의 처지에서 최대한 자제하고, 노력하고, 온갖 내외적인 어려움과 고통을 물리치고 이 자리에 왔다는 서로에 대한 인정, “고맙습니다”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선생님이 가시면서 당신의 통일신학과 여성신학과 민족 하나 됨과 인류 나아갈 길의 소망과 메시지를 이 두 언어로 축약해서 주고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용기를 내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와서 이 땅의 비참과 고통, 전쟁과 분열을 걷어내는 일에 남북이 손잡고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나누어주면서 다시 통일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6. 선생님은 한민족이 겪어온 그동안 역사에서의 고통과 비참, 그리고 특히 1920년대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갈등으로 인한 민족의 분열과 남북의 현실이 결코 의미 없이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민족통일과 민중해방의 불가분성”을 강조하시면서, 만약 남쪽이 자신 속의 민중의 고통을 돌아보면서 북쪽의 지금까지의 사상적 투쟁이 그동안의 온갖 국제적인 고립과 배타의 어려움을  견뎌내면서도 민족적 자주성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고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챈다면, 그래서 서로 각자가 이룬 일과 한계를 알고 서로 손을 잡는다면, 거기서의 열매는 세계 인류 문명과 특히 ‘제3세계’의 푯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한민족의 인류 문명적 역할과 소명에 대한 자각으로 선생님은 자신의 통일신학을 점점 더 남북 공동의 민족적 시원에 대한 자각 위에 세우시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동이족의 고기(古記)에도 관심하시고, 현실의 온갖 다름을 넘어서 남북과 동서, 교회 안과 밖, 여성과 남성을 연결하고, 지금까지의 세대와 가족의 개념도 크게 뛰어넘으시면서 창조적으로 사셨습니다. 그런 큰 통합과 사랑, 인고의 삶을 사셨던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성서가 이사야서 40장 1~2절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선생님께서 지금 남북의 위기로 더욱 큰 위험에 직면한 우리 민족에게 그동안의 모든 수고와 아픔을 위로하시며 큰 희망을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7. 그래서 이 말씀을 함께 나눔으로 또 다음 세대의 한국 여성신학자로서 선생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갈 것을 다짐하며 이 추모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김애영 선생님께 하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교하여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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