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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회심기념 기고] 존 웨슬리 회심 284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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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천 위클리| 작성일2022-05-23 | 조회조회수 : 1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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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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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웨슬리회심기념 284주년을 맞는다

 

5월 24일은 ‘존 웨슬리 회심일’입니다. 그 다음 주 5월 30일 월요일은 메모리얼 데이이고 6월 5일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날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가슴 즉 마음(Heart)이라는 것입니다.


오천년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 ‘하트(Heart)’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라를 만들면서 다른 장기는 다 버리면서도 심장만은 몸속에 다시 넣어둔 고대 이집트, 수천 명의 살아 있는 심장을 제물로 바친 아스텍 문화, 중세 기사도 시대의 시인들이 노래한 에로틱한 사랑, 사랑의 고통으로 마음이 갈가리 찢기는 세익스피어의 인물들, 밸런타인데이나 심장 이식이 가능해진 오늘 이 시대의 하트까지, 인류 역사에서 심장과 마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파란만장한 장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하트(heart, 마음)는 기나긴 역사 속에 고대에서도, 중세에서도, 그리고 현대까지 어느 한 군데에서도 빠지지가 않고 이어져 오며 오늘날도 새롭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으면 1분 30초에서 3분 사이에 손을 잡고 있는 사람과 심장(Heart) 뛰는 속도가 비슷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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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는 웨슬리 회심기념탑


5월 22일 주일에 지키는 존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1738년 5월 24일-회심일)은 웨슬레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잡힌 날입니다.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미국 남북 전쟁(1861-1865년)당시 나라 위해 목숨을 희생한 군인들을 회상하며 기념하는 우리나라의 현충일과 같은 날입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루 공휴일이지만 유가족들의 가슴에는 아픔이 서려 있는 날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 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1703년 6월 17일 노스 링컨셔 엡워스(Epworth, North Lincolnshire)라는 작은 타운에서 19남매중 15번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1662-1735)는 영국 국교회(Episcopal Church of England)목사였습니다.


특히 웨슬리는 그의 어머니 수잔나(Susanna Wesley)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웨슬리가 설교시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은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3:2) is not this a brand plucked out of the fire?(Zechariah 3:2)”입니다.


왜냐하면 1708년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부친이 목회하던 엡워스의 목사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그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화염 속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의 부모는 이 아이가 장차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 수산나는 웨슬리의 영성을 위해 매일 성경공부와 기도훈련 등 엄격한 신앙교육을 실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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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에 있는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 뉴룸 내부


1720년 그의 나이가 17세가 되었을 때 웨슬리는 6년간 런던의 명문 챠터하우스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학내의 가장 규모가 큰 크라이스트 처치대학(Christ Church College)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는 이 대학안의 신성클럽(Holy Club)에서 활동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당시의 사회는 혼탁하고 도덕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퇴폐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를 비롯한 동료들은 매주 이틀간은 금식하고 성찬에 참여하며 매일 아침 저녁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희랍어 신약 공부와 고전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수요일, 금요일에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감옥에 있는 자들을 방문하며 봉사와 선행에 힘쓰게 됩니다. 철저한 성경 연구와 엄격한 규칙속에서 클럽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규칙주의자(Methodist)’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Methodist, 규율가)은 후에 감리교의 이름이 됩니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웨슬리는 1726년 링컨 칼리지 펠로우(fellow)로 선발돼 그곳에서 봉직하다가 1735년 10월 14일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미국의 원주민에게 선교하기 위해 조지아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웨슬리가 탄 배가 폭풍을 만나게 되고 모두가 두려움과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때 웨슬리는 자신과 동승한 영국인들 80명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지만 독일의 모라비안교도 27명은 폭풍 속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찬송을 부르는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웨슬리는 깊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는 그들이 갖고 있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에 도전을 받게 되는데 이 사건은 훗날 웨슬리가 모라비안 감독인 피터 뵐러(Peter Böhler, 1712-1775)의 간증을 통해 구원을 다시금 확신하는 계기가 됩니다.


1738년 2월 1일 웨슬리 일행은 2년 동안 조지아 원주민 사역에서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첫 선교사역의 실패로 인한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에게 영적인 큰 변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리는 런던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London)거리에 있는 한 모라비안 교인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올더스게이트의 회심사건''''''''입니다. 이 회심사건은 사도 바울과 어거스틴, 루터의 회심사건과 더불어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회심사건이라고 평가되어집니다.


그곳에서 한 평신도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마음 속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것을 듣는 도중에 웨슬리는 그의 마음이 성령으로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웨슬리는 그 날의 상황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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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는 웨슬리채플 앞에 세워진 웨슬리 동상 


“그날 저녁에 나는 올더스게이트 가에 있는 기도모임에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참석했다. 거기서 어떤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다. 밤 9시 15분 쯤, 그 낭독자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변화를 가져 오시는 일을 묘사하는 말을 듣는 중에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 짐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음을 느꼈고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없이 하였다는 확신이 생겼고 나같은 자의 죄를 다 사하시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 존 웨슬리 일기(John Wesley Jornal)


그날 그 자리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요 10년간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존 웨슬리의 가슴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면서 평소에 머리로만 알고 있던 내용이 마음에 확실하게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험은 웨슬리 자신이 훗날 자신이 믿는 복음을 지성의 전당인 옥스퍼드대학안의 채플에서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확신을 갖고 담대히 전하게 되는 모멘텀이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이날 이후 구원의 확증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1738년 5월 24일에 경험한 이 올더스케잇 회심사건이 있기 전 자신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정직한 고백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웨슬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의 의(義) 즉, 칭의(Justification)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는 성결한 삶, 성화(Santification)를 이렇게 정리하여 말했습니다. “회개가 종교의 현관과 같다면 믿음은 문과 같고 성결은 종교 그 자체다.”


이후 웨슬리의 설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회심과 칭의, 의인에 뒤따르는 성결한 삶의 열매로서의 선행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콘월(Cornwall) 지방의 판사는 “감리교 설교자들이 문제아를 모조리 새사람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나는 할 일이 없습니다. 아직도 술주정뱅이, 깡패, 아내를 괴롭히는 남자,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있거든 어서 웨슬리에게 데려다 주십시오. 그가 즉시 그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한번은 웨슬리 설교를 방해하러 온 양조장 주인이 설교를 듣고 회개하며 양조장을 없애 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원래 웨슬리는 1725년 영국 국교회에서 안수 받은 이후 국교회 안에서 ‘교회 안에서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로 교회 내의 갱신운동을 하기 원했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입장을 바꾸어 브리스톨 인근 한함 마운트(Hanham Mount)에서 첫 야외설교를 하며 “온 세계가 나의 교구(I look upon all the world as my parish)”라고 선언하게 이르게 됩니다. 당시 영국 국교회가 교회 밖에서 설교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고 브리스톨의 감독이 웨슬리의 설교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고 강단을 내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국 국교회목사이면서 영국국교회 강단에서 설교하는 일을 거절당하자 웨슬리는 그의 친구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처럼 옥외로 나가 들판이나 공원, 잔디밭, 광산, 거리, 들, 시장 철조공장 등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설교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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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는 당시 옥외설교가 금지되었지만 브리스톨 광부들을 대상으로 옥외설교를 시작한 한함 마운트


세계교회 역사상 웨슬리만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깊이 파고든 전도자도 없었습니다. 당시 그를 배척한 콘월 지방에는 일생 동안 32번이나 방문해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온 세계가 나의 교구”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단 한 사람만 남아 있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땅 끝 까지 달려갈 것이다”라며 1753년 직접 발 벗고 마음 속에 불붙은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일년에 5천 마일 가량을 말을 타고 런던, 브리스톨, 글로스터,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영국의 방방곡곡에서 설교하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영적 거인이었습니다.


복음에 빚진 웨슬리는 그가 말을 타고 복음을 전한 거리는 1년에 평균 8000마일(1만2800㎞), 40년 간 52만㎞로 지구를 13회 이상 순회하며 그 틈에 4백여 편의 저술활동을 하며 책을 펴냈으며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하루 평균 32km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목회 66년 동안 한번도 걸러본 적이 없이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하고 설교하였고 동생과 만든 수많은 찬송가 중에 1778년에는 선곡하여 525곡의 커다란 찬송가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의 구호를 실천하는 목사요 전도자요 신학자였습니다. 철저히 칭의와 성화에 바탕을 둔 웨슬리의 설교는 당시 타락한 영국 사회의 도덕과 경제, 윤리를 변화시킨 토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결혼생활은 비록 행복하지 못하고 그의 외모는 왜소했지만 그의 작은 몸 안에 세계를 흔드는 힘이 들어있었습니다.


웨슬리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하였습니다. 영국 런던 시티로드선상에 있는 웨슬리 기념교회 옆 웨슬리 하우스 3층에 가면 두평 남짓되는 그의 작은 기도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가슴속에 성령의 불씨를 받아 능력있는 목회자요 전도자요 신학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필자 또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몇차례 동료 목회자들과 함께 웨슬리가 새벽마다 기도했던 영국 런던 시티로드 웨슬리 하우스 기도실(Power Room, 능력의 방)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8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찻 주전자, 그리고 다 낡아빠진 코트 한 벌밖에 없을 정도로 자기의 모든 것을 복음사역을 위해 닳아 없어지까지 소진하였습니다. 웨슬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하루 전날 그는 잠을 많이 자고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작지만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는 거룩함으로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반석도 없습니다".


다음 날 웨슬리가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2번 외치고 세상을 떠날 때 주위에 20명이 둘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침대 주위에 흰 오라가 비추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날 그의 시신은 현재 웨슬리기념교회 뒷 뜰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를 보기 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왔고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위대한 빛은 하나님의 보기 드문 섭리로 말미암아 이 나라들을 비추기 위해 떠올랐다. 이 묘비를 읽는 이들이여, 하나님의 도구인 존 웨슬리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라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영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의 사원에 가면 웨슬리 형제를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비에는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와 6500곡이 넘는 찬송가를 작시한 챨스 웨슬레(Charles Wesley, 1707-1788)가 말한 3가지 명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세계는 나의 교구다(I look upon all the world as my parish).”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은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해 나가신다 (God buries His workmen, but carries on His work).”


오늘날 필자가 속한 미국 연합 감리교내의 상황을 보면서 존 웨슬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5년전인 1786년 그의 일기장에 기록된 내용을 회상하며 다시금 초기 존 웨슬리 감리교운동의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


“나는 감리교 메소디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단지 능력 없는 종교의 형식만을 가진 일종의 죽은 종파로 존재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만약에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가르침과 성령과 신앙훈련을 모두 견고하게 붙잡지 않을 경우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I am not afraid that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should ever cease to exist either in Europe or America. But I am afraid lest they should only exist as a dead sect, having the form of religion without the power. And this undoubtedly will be the case unless they hold fast both the doctrine, spirit, and discipline with which they first set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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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목사

(워싱턴 하늘비전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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