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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제목: "눈과 언약"을 맺었던 욥의 인생관 (욥기 3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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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5일

제목: “눈과 언약”을 맺었던 욥의 인생관 (욥기 31:1-12)

“1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 3불의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재앙이 아니겠느냐. 4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 언제 나의 행위가 허탄하였으며 내 발이 궤휼에 빨랐던가. 6 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8 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 9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10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11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받을 악이요. 12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모든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 할 것이니라.”

  욥은 눈으로 볼 것과 외면할 것을 분별하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31:1a)”라고 말합니다. ‘눈’은 육신과 세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눈과 “언약(약속, 계약)”을 맺었다는 말은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다져진 마음으로 육신을 다스리는 삶을 살겠다는 신념을  표명한 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원칙에 따라 그는 “처녀(여성)”에게 눈을 주지 않았는데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 목적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쉬운 그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었습니다: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9절)” 눈(보는 것)과 마음(관심)과 행동(인생)의 연관성을 깨달은 욥은 행동을 다스리는 그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그 마음을 유혹할 수 있는 눈을 ‘관리’하는 원칙을 세우고 살았던 것입니다. (창 3장의 이브를 연상시키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조: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3:3)]
  욥이 특출한 인생관(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음은 당시 사회적 관념을 고려하면 부각됩니다. 당시는 부자(=권력)가 다수의 여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입니다. 여인이나 그 가족이 저항하더라도 권위를 내세워 욕정을 채우던 시대입니다. (참조: 밧세바를 범한 다윗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삼하 11장) 때문에 욥은 세상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법으로 조각된 인생관(가치관)을 가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참조: 롬 12:2; 요 17:14)
  그의 가치관이 그의 인생을 주도한 사실을 31:7b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언제…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육신(눈)이 원하는 것이 있었으나 마음으로  물리쳤다는 말입니다(롬 8장). 우리가 잘 알듯이 부, 성공, 권력 등은 사람, 도덕, 법 등을 무시하는 교만의 씨가 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부, 성공, 권력 등을 손에 쥐었음에도 요동하지 않고 ‘언약’을 지켜냈던 것입니다.

  그가 그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주목한 이유를 31:10이 암시하는데, 만약에 그가 처녀나 이웃의 아내를 탐내었다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참조: 마 7:14-황금 법; 갈 6:7) 즉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이 세상은 ‘인과보응’이라는 보편적인 원칙(정의)이 적용되기 때문에 자기가 타인(이웃)에게 악이나 죄를 행하면 그의 아내도 유사한 수치를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었습니다 (31:2-4). 즉, 그는 사람의 행동 중에 벌을 받을 행동이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심판을 믿었던 것입니다. 고로 그는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31:11-12절)”며 그의 세계관을 밝혔습니다.  (참조: 신 20:10, 14; 22:22)
  욥은 신앙관, 인생관,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요약 한다면, 세상에는 옳고 그른 일이 있고, 선과 악이 있음을 인식하는 지혜를 깨달았고, 선택에따라 멸망의 길, 또는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고전 1:18), 구원이라는 목적지로 그를 인도해 갈 로드맵(인생관)을 그렸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가 자신과 맺은 ‘언약’은 구원의 목적지로 인도하는 장치(수단)였던 것입니다.
  욥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인물입니다. 많은 유혹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끝없는 내적 갈등과 씨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마 7:13-14),” 즉 외로우나 바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로 인생의 종점(심판대)에 도달했을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고 말할 수 있는 부끄럼 없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 간 인물입니다.

  요즘 ‘선(善(착할 선)/線(줄 선)’ 없이 막 사는 사람들이 뉴스를 장식합니다. 무분별한 관용, 부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모든 방법이 정당화 되는 사회적 정서,  부나 권력을 손에 쥐면 순식간에 타락의 길을 걷는 사람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삼키고 있습니다. (벧전 5:8) 사람들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못 보는(마 7:1-5) 실수를 범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권면한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빌 2:15)”로 나타나기 위하여 인생의 로드맵을 그리고, 매일 우리 마음에 새 언약을 새기고, 선을 긋는 노력을 하여 하루 하루 더 나은 사람(성화되어 가는 삶),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새 피조물로 변해가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가정, 직장,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이바지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참고 자료: George Fosher, “The Righteous Man in Job 31.” Essays in Old Testament Ethics, edited by James L. Crenshaw and John T. Wi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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