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와 아버지의 조력
페이지 정보
본문
[ 이훈구 장로 칼럼 ] 손흥민 선수와 아버지의 조력
( 아래 웹사이트를 클릭하시면 KCMUSA 칼럼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훈구 장로 칼럼] 손흥민 선수와 아버지의 조력
https://kcmusa.org/bbs/board.php?bo_table=mn03_6&wr_id=6481
나는 어릴 적부터 공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아이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동장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공을 차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대표로 뛰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여름마다 열리던 마을 대항 축구대회에서 마을을 대표해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 시절 운동장에는 푸른 잔디가 아니라 딱딱한 흙바닥뿐이었지만, 골망이 흔들리던 순간의 짜릿한 기쁨, 경기가 끝난 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집에 돌아와 시원한 물을 등에 끼얹던 그 감각은 지금도 내 청춘의 한 장면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대학 시절에도 새벽녘 운동장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던 순간마다 땀방울은 내 청춘의 훈장처럼 반짝였고, 그때만큼은 세상의 어떤 걱정도 사라졌다. 이제는 60대 중반을 넘어 직접 운동장에서 뛸 수는 없지만, 여전히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일은 내 삶의 설렘이자 오래된 친구 같은 기쁨이다.
특히 손흥민 선수가 미국 LAFC로 이적한 이후에는 그의 경기를 빠짐없이 시청하는 열성 팬이 되었다. 그는 내게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오래된 축구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텔레비전 속에서 그가 골을 넣는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고, 마치 내가 TV 화면을 뚫고 들어가 초록빛 잔디밭을 함께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10년 동안 활약하며, 2025년 5월에는 토트넘 홋스퍼 FC의 주장으로서 프로 선수로 뛴 15년 만에 이룬 첫 번째 UEFA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는 토트넘을 떠난 후 어느 나라, 어느 팀으로 갈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늘 그의 곁을 지키던 아버지가 아들의 장래를 위해 미국행을 권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내다보며 미국 무대, 특히 한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의 이적을 조언했고, 그 선택은 손흥민의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처음 다섯 경기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동료들이 그의 움직임을 읽고 호흡을 맞추며 진정한 팀워크가 살아났다. 여섯 번째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원정에서 4대 1의 완승을 이끌었고, 일곱 번째 경기에서도 한 골과 두 개의 도움으로 홈 경기에서 4대 1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스타를 넘어 팀을 하나로 묶는 중심축이 되었다. 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는 눈에 띄게 늘었고, 등번호 7번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팬들의 사랑을 증명했다.
손흥민의 진정한 힘은 뛰어난 기량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개인 플레이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빠르게 동료들과 어울려 자연스레 리더십을 드러냈다. 그의 겸손한 태도와 성숙한 인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묵묵히 곁에서 지켜주고 이끌어 준 아버지의 훈련과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열매였다.
나 역시 세 자녀를 키운 아버지로서 손흥민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자녀들이 어릴 적, 나는 세상의 어떤 성공보다도 믿음 안에서 바르게 자라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재산도 명예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라 믿었고, 그 길을 걷도록 돕기 위해 애써 왔다. 지금은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여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는 손주들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어야 할까? 손흥민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듯, 나 또한 손주들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 주고 싶다. 그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뿌리내리고, 감사와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손주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조력이며, 내 삶의 마지막 사명이라 믿는다.
이훈구 장로 G2G 선교회 대표
저서 : 크리스천 자녀교육 결혼을 어떻게 시켰어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
( 아래 웹사이트를 클릭하시면 KCMUSA 칼럼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훈구 장로 칼럼] 손흥민 선수와 아버지의 조력
https://kcmusa.org/bbs/board.php?bo_table=mn03_6&wr_id=6481
나는 어릴 적부터 공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아이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동장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공을 차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대표로 뛰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여름마다 열리던 마을 대항 축구대회에서 마을을 대표해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 시절 운동장에는 푸른 잔디가 아니라 딱딱한 흙바닥뿐이었지만, 골망이 흔들리던 순간의 짜릿한 기쁨, 경기가 끝난 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집에 돌아와 시원한 물을 등에 끼얹던 그 감각은 지금도 내 청춘의 한 장면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대학 시절에도 새벽녘 운동장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던 순간마다 땀방울은 내 청춘의 훈장처럼 반짝였고, 그때만큼은 세상의 어떤 걱정도 사라졌다. 이제는 60대 중반을 넘어 직접 운동장에서 뛸 수는 없지만, 여전히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일은 내 삶의 설렘이자 오래된 친구 같은 기쁨이다.
특히 손흥민 선수가 미국 LAFC로 이적한 이후에는 그의 경기를 빠짐없이 시청하는 열성 팬이 되었다. 그는 내게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오래된 축구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텔레비전 속에서 그가 골을 넣는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고, 마치 내가 TV 화면을 뚫고 들어가 초록빛 잔디밭을 함께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10년 동안 활약하며, 2025년 5월에는 토트넘 홋스퍼 FC의 주장으로서 프로 선수로 뛴 15년 만에 이룬 첫 번째 UEFA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는 토트넘을 떠난 후 어느 나라, 어느 팀으로 갈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늘 그의 곁을 지키던 아버지가 아들의 장래를 위해 미국행을 권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내다보며 미국 무대, 특히 한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의 이적을 조언했고, 그 선택은 손흥민의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처음 다섯 경기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동료들이 그의 움직임을 읽고 호흡을 맞추며 진정한 팀워크가 살아났다. 여섯 번째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원정에서 4대 1의 완승을 이끌었고, 일곱 번째 경기에서도 한 골과 두 개의 도움으로 홈 경기에서 4대 1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스타를 넘어 팀을 하나로 묶는 중심축이 되었다. 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는 눈에 띄게 늘었고, 등번호 7번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팬들의 사랑을 증명했다.
손흥민의 진정한 힘은 뛰어난 기량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개인 플레이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빠르게 동료들과 어울려 자연스레 리더십을 드러냈다. 그의 겸손한 태도와 성숙한 인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묵묵히 곁에서 지켜주고 이끌어 준 아버지의 훈련과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열매였다.
나 역시 세 자녀를 키운 아버지로서 손흥민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자녀들이 어릴 적, 나는 세상의 어떤 성공보다도 믿음 안에서 바르게 자라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재산도 명예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라 믿었고, 그 길을 걷도록 돕기 위해 애써 왔다. 지금은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여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는 손주들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어야 할까? 손흥민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듯, 나 또한 손주들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 주고 싶다. 그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뿌리내리고, 감사와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손주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조력이며, 내 삶의 마지막 사명이라 믿는다.
이훈구 장로 G2G 선교회 대표
저서 : 크리스천 자녀교육 결혼을 어떻게 시켰어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
- 이전글2025년 2학기 횃불회 3주차 9/29 강의 안내 25.09.28
- 다음글찬양과 기도로 25.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