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조명환의 추억으로 가는 여행(44)] 이스라엘 국가 정체성의 상징. . . 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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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설명: 이스라엘 남부 사해 서쪽에 있는 마사다 전경.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유대인 900여명이 결사항전을 벌인 곳이다. 이들은 결국 로마에 항복하여 노예가 되느니 끝까지 유대인으로 죽겠다며 자결의 길을 선택했다(이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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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에 오른 필자. 사해도 덥지만 마사다 역시 덥기는 마찬가지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마사다(Masada)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 빼 놓을 수 없는 코스 중 하나다. 히브리어로는 ‘요새’라는 뜻이다. ‘백문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 마사다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듣는 것과 가서 보는 것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거대한 바위산. 사막의 침묵 속에 우뚝 서 있는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라기보다 한 민족의 생존 의지와 역사적 비극, 그리고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오늘날까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사다를 쉽게 생각하면 평평한 사막에 우뚝 자리잡고 있는 한국식품점에서 파는 카스텔라 빵을 연상하면 된다. 그처럼 사방이 모두 깎아 지른 절벽이다. 그리고 그 위에 오르면 넓은 고원지대 같은 평평한 정상부가 펼쳐진다.
거기서 동쪽으로 빤히 내려다 보이는 사해보다 약 450미터 높은 거대한 암석 고원. 정상은 길이 약 600미터, 폭 300미터 정도로 비교적 넓고 평탄하다. 3면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고 케이블 카를 타지 않으면 접근 가능한 길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유대광야와 사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고립된 풍경, 정복 불가능한 요새로 불렸던 이곳이 헤롯 대왕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이곳을 자신의 정치적 피신처로 삼았고 호화별장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래서 절벽을 따라 계단식으로 내려가는 3층 구조의 궁전을 건축했다. 곡물, 와인, 기름 등을 보관하는 대규모 저장시설도 만들었다. 장기적인 고립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빗물과 홍수를 모아 저장하는 거대한 저수조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고 심지어 로마식 목욕탕도 존재했었다. 여차하면 군사 요새이자 동시에 화려한 왕의 휴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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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것은 곡물창고다. 마사다의 유대인들은 빗물을 받아 저수조를 만드는 등 놀라운 방법으로 생존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곳이 왜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을까?
AD 66년,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면서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났다. 결국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AD 70년 티투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이때 960명의 유대인들(열심당원)과 가족들이 바로 이 천연요새 마사다로 피신한 것이다.
그러나 로마군은 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AD 73년 로마군은 결국 마사다를 포위했다. 그러나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게 불가능했다. 그때부터 로마군은 마사다 서쪽 비탈에 토성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흙으로 언덕을 쌓아 마사다 절벽 위에 오르기 위한 전략이었다. 1년에 걸쳐 언덕을 쌓은 결과 마침내 로마군은 난공불락 마사다를 마침내 점령하고 말았다. 그동안 마사다 요새에선 900여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빗물을 받아 생활하면서 생존을 이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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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대왕이 이곳에 궁전을 세울 때의 건물 모양을 복원한 것이다. 궁전에서 보면 앞쪽에는 유대 광야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사해가 보이는 기가 막힌 절경에 건축되었던 노스 팰리스의 외관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군에 의해 마사다가 침략을 당하던 날 밤 유대인 지도자 엘리아잘(Eleazar Ben Yair)은 유대인 모두를 모이게 한 후, 그들이 로마의 노예가 되거나 로마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수치보다는 스스로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 낫다고 연설을 했다. 모두 그의 자결의지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죽이고 남자들만 남게 되자, 10명씩 조를 짜고 각 조에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씩 정한 후에 그 한 사람이 9명을 죽인 다음 그 시체들을 가즈런히 눕혔다. 그렇게 해서 최후에 남는 자는 요새에 있는 모든 비축 물자들을 불태우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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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에 오르기 위한 케이블카. 이스라엘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이곳을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이튿날 아침 로마 군인들이 총 공격하여 쳐들어 갔으나 마사다는 이미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오직 엘리아잘에 동참하지 않고 동굴 속에 숨어 있던 두 여인과 어린이 다섯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그 때가 A.D. 73년 5월. 이 날은 마사다 최후의 날이며, 동시에 이스라엘 멸망의 최후의 날이었다.
오늘날 마사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역사 현장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비극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생존과 자주, 그리고 국가 정체성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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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위클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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