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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행 [조명환의 추억여행(21)] 프랑스의 자존심…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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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크리스천 위클리| 작성일2023-01-03 | 조회조회수 : 8,0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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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일컫는 에펠탑 

     

    프랑스 파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사랑과 서정의 젖줄 세느강 때문이고 세느 강이 아름다운 것은 그 강가에 에펠탑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느강이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고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움을 빼고 나면 그 강의 명성은 아마도 크게 축소되었을지도 모른다.


    에펠탑은 1931년 뉴욕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솟아오를 때까지 약 40년동안 인간이 하늘을 향해 쌓아올린 건축으로는 세계 최고였다. 세계 7대 경이(The Seven Wonders)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집트이 피라밋, 터키의 성 소피아 사원, 미국의 워싱턴 기념탑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인도의 타지 마할, 그리고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피사의 사탑과 함께. 지금은 프랑스인의 자랑이요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않고 한번 오르고 내리는 에펠탑, 그러나 그 탑이 세워질 때 그것은 지금처럼 좋은 평가는커녕 천덕꾸러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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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면 에펠탑에서 발사되는 레이저 광선이 파리를 황홀하게 한다. 그러나 최근엔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로 밤에 불을 끄기로 했다고 들었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세계 만국 박람회를 위해서 건축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산업혁명 이후 철강산업의 ‘큰 형님’처럼 군림하던 영국의 콧대를 꺾어주고 프랑스도 철강이라면 이 정도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한 자존심 경쟁으로 타워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모를 벌인 결과 700여명이 응모했고 여기서 뽑힌 사람이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 그는 1832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파리의 중앙공업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화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화학공장을 경영하던 숙부가 세상을 뜨면서 그의 꿈도 사라졌다. 그 후 철도회사에서 취직하여 철교 기술자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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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올림픽을 홍보하는 오륜기 옆에선 필자. 뒤에 에펠탑이 보인다   


    에펠은 34살이 되던 1866년 그는 에펠회사를 설립해 사장이 되었고 10년째가 되는 1875년 항가리의 페스트역과 포르투갈의 도루 강의 대교모 교량공사를 수주하여 에펠사는 국제적인 건설업체로 도약했다. 근대 교량의 시작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철강의 대량생산시대를 맞으면서 부터다. 그전까지 다리는 대부분 돌다리였다. 무거운 기관차가 다리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한 때였다. 그러나 철강의 등장으로 철교가 등장했고 그때부터 다리도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철강 시대를 맞으면서 세상에 등장한 대표적인 구조물은 뭐니뭐니해도 파리의 에펠탑과 영국의 포스 교(Forth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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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세느강. 세느강과 에펠탑은 아름다운 파리를 연출하는 영원한 파트너다


    에펠탑을 눈여겨 살펴보면 아치 구조위에 탑을 올려놓은 모양이다. 곧 가로로 놓인 철교를 세로로 세워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에펠탑은 철교를 놓는 연장선상의 구조물이라 해도 무방하다. 1887년 1월 28일에 공사가 시작되어 25개월 만에 공사를 마무리 했다. 300여명의 곡예사 같은 일꾼들이 달려들었고 사용된 철강만도 무게로 7천 톤. 에펠탑이 그 모양을 드러내자 “거대한 박람회 기념 건조물에 의한 과학과 산업의 승리”라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에 혹평을 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예술가들이 그랬다. 대개 5층 내지 6층 짜리 석조건물이 주종을 이루는 아름다운 파리의 외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설가 모파상이나 ‘아베 마리아’의 작곡가 구노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추악한 철 덩어리’, ‘천박한 이미지’, ‘파리 예술에 대한 모독’ ‘공장의 굴뚝같은 형태의 공업기술을 예술도시 파리에 끌어들인 졸작’, ‘공업의 문화재 파괴로부터 예술을 지키자’ 라는 등 비판과 항의가 잇따랐다. 이 에펠탑이 도대체 예술이냐, 공업이냐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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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느강을 둘로 가르는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역시 에펠탑에서 내려다 보인다


    에펠은 에펠탑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에펠탑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는 3백 미터 높이의 깃대 위에 국기를 휘날릴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쨌거나 모파상 같은 사람은 파리 어느 곳에서라도 훤히 보이는 이 에펠탑이 꼴도 보기 싫어서 에펠탑 바로 밑에 있는 식당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에펠탑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나 박람회 기간 중 무려 6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관람객들이 에펠탑에 감탄하고 말았다. 세계인들이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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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느강의 유람선


    세월이 흐르면서 파리 시민들의 에펠탑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은 이 탑을 놓고 ‘파리 서정의 극치’라고 극찬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한 심리학자는 이것을 반복 노출이론으로 설명한다. 반복 노출이론에 의하면 어떤 대상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해 점차 우호적인 반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에펠탑은 그 엄청난 높이로 인해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에게 쉽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노출이 매일 반복되면서 시민들은 점차 에펠탑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하게 되었다는 것.


    에펠탑은 본래 20년이란 시한부 생명이었다. 에펠탑을 건설한 회사가 그 장소를 빌려 쓰는 조건이 20년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910년 에펠탑은 해체 위기에 직면했었다. 에펠탑 건설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극성을 떨어댔던 것처럼 에펠탑을 살리자는 사람들 또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해체반대운동을 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그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에겐 오히려 에펠탑이 없는 파리 하늘이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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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펠탑 맨 꼭대기에 오르면 이런 밀랍인형이 있다. 당시 발명왕이던 미국의 에디슨(왼쪽)이 이 에펠탑으로 꼭대기로 에펠을 찾아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때마침 무선통신이 탄생, 에펠탑을 구제하는데 일조했다. 에펠탑 정상에 무선 안테나가 설치되고 이로 인해 대서양을 넘나드는 전파들을 쏘아댈 수 있었으니 에펠탑을 함부로 헐어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1918년에는 라디오 방송을 위한 장치가 설치되었고 1957년에는 텔레비젼 안테나가 설치되었으며 현재는 기상관측 장비와 항공운항 장비까지 가세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1985년부터는 야간에 조명을 비추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되었다.


    파리시민들 가운데 탑이 너무 높아서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져가면서 에펠탑에 오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같은 비판을 면키위해 에펠은 얼마나 안전한지를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 에펠탑 제일 꼭대기에 집무실을 만들어 놓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매일 거기로 출근했다고 한다.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에 오르면 밀랍으로 된 에펠의 모습이 당시의 집무실에 앉아 있고 당대 발명왕으로 명성을 얻어가던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이 에펠을 방문하여 한수 배우겠다는 듯 존경의 눈으로 앉아 있는 밀랍인형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에펠탑의 전망대에는 세계 각국의 제일 높은 건축물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고만 고만 키재기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한참 밑으로 쳐져서 남산타워가 그려져 있다.


    매년 이 에펠탑에 오르는 사람 숫자는 4천만명. 높이 320미터에 이르는 이 탑의 정상에 오를 때 2번 엘리베이터를 바꿔 타고 올라간다. 미국 최고 빌딩중 하나인 시카고 ‘시어즈 타워(Sears Tower)’를 올라갈 때는 밀폐된 엘리베이터가 재빠르게 움직이느라 귀가 이상하게 멍멍할 뿐 그 높이 감각이 둔하게 느껴지는데 에펠탑은 오르는 엘리베이터가 전망대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오르다 보면 파리의 야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거기서 보이는 세느강과 노틀담 사원, 개선문과 루블르 박물관 등등 . . . 엘리베이터를 바꿔 타는 전망대 주변에는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고 이 탑에서는 망년회등 다양한 음악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또 탑의 밑바닥 광장에서도 다양한 연주회와 이벤트가 연중 개최된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들은 1889년 에펠에게 레종 도뇌르란 프랑스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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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펠탑은 낮에 보는 것보다는 밤에 보는 것이 더 아름답고 웅장해 보인다


    중후한 석조 고딕건물들의 자태가 유명세를 과시하는 파리의 한복판에 철제로 세계 최고의 탑을 쌓은 자 다운 에펠의 고집과 야심이 서려 있는 그 에펠탑에 오르면 목적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목적이 분명하고 그것이 선한 것이라면 때로 주변의 혹평 따위는 접어두고 도전할 줄 아는 ‘깡다구’가 새로운 문화를 잉태하는 저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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