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양반의 정원 소쇄원(瀟灑園), '비갠 뒤에 부는 청량한 바람'이 머무는 곳 > 라이프 | KCMUSA

[한국] 조선 양반의 정원 소쇄원(瀟灑園), '비갠 뒤에 부는 청량한 바람'이 머무는 곳 > 라이프

본문 바로가기

라이프

홈 > 문화 > 라이프

세계여행 [한국] 조선 양반의 정원 소쇄원(瀟灑園), '비갠 뒤에 부는 청량한 바람'이 머무는 곳

페이지 정보

작성자 KCMUSA| 작성일2025-10-21 | 조회조회수 : 2,015회

본문

e628ff706199c4d93cfe982c93cce340_1761080292_919.jpg
 

2c65ded4b292db5a404d238732bde5c3_1761078716_4462.jpg
제월당(齊月堂) 


소쇄원은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원이다. 소쇄원(瀟灑園)이라는 말은 맑고 깨끗한 정원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종 때 학자 양산보(1503년-1557년)가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로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하러 내려가 지은 정원으로,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힌다고 한다. 


한국 민간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명승 40호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e628ff706199c4d93cfe982c93cce340_1761080667_459.jpg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

 

2c65ded4b292db5a404d238732bde5c3_1761078736_3954.jpg
광풍각(光風閣)/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 



2c65ded4b292db5a404d238732bde5c3_1761078801_7017.jpg
 

e628ff706199c4d93cfe982c93cce340_1761080455_6021.jpg


2c65ded4b292db5a404d238732bde5c3_1761078783_5532.jpg
 


내원(內園)의 면적은 1400여 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외원(外園)까지 포함하면 수 만평에 이르는데,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다.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소쇄원의 주요한 조경 수목으로는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흘러내리는 폭포, 걸상 모양의 탑암과 책상바위 상암, 홈을 판 고목으로 물을 이어가는 두 개의 연못, 上下池가 있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애양단 계곡을 건너지르는 외나무다리 약작, 경사지에 적절히 단을 쌓아 꽃과 나무를 심고 담장으로 내부공간을 아우르고 감싸고 있다.


2c65ded4b292db5a404d238732bde5c3_1761078774_3734.jpg


e628ff706199c4d93cfe982c93cce340_1761079958_5434.jpg
 

e628ff706199c4d93cfe982c93cce340_1761079717_0124.jpg
 

2c65ded4b292db5a404d238732bde5c3_1761078750_8282.jpg

  

정확한 조영 시기는 1530년대에 시작하여 양산보의 자녀와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양산보는 수백 마디로 된 효부(孝賦)를 지어 효에 대한 근본정신과 사상을 밝혔다. 후학인 이민서는 “한문에 밝지 않은 일반인들의 이해를 위해 한글을 새기어 적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퍽 감동적인 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쇄원은 은둔자인 양산보 자신을 위한 정자이지만 그의 곧은 뜻을 알게 된 사림들은 소쇄원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주인과 교류를 하게 됨으로서 열린 공간으로 호남 사림의 명소가 되었는데, 그와 교류하였던 인사들은 송순, 임억령,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김성원, 송강 정철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선비들이었다.


그의 부인은 광산김씨로 정랑 김후의 딸로 김윤제의 누이이다. 결혼을 한 해는 언제인지 확실치 않지만 19세에 첫 아들을 낳 고 21세에 차남인 자징이 태어나고 25세에 셋째 아들 자정이 태어났으며 그 해에 부인이 죽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양산보는 후손에게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지역이 정유재란 때 왜적들의 집중적인 공략을 받았기 때문에 소쇄원의 건물들이 불에 타버리고 손자인 양천운이 다시 중건하게 된 기록이 남아있으며, 5대손인 양경지에 의해 완전 복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소쇄원은 양산보의 유훈대로 후손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15대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 인근에 송강의 사미인곡 등이 전시된 가사문학관이 있다.


주소: 대한민국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영업시간: 오전 9:00에 영업 시작

연락처: +82 61-382-1071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