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응시한 '호프'…희망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최기자의 객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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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야기
기독교 상징 의도적 차용

▲영화 '호프' 스틸컷. (사진출처=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데일리굿뉴스] 최상경 기자 = 인간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믿는다. 만물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가고, 자신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낯선 존재를 만나면 경계부터 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너무도 쉽게 폭력으로 이어진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이 익숙한 인간의 모습을 가장 낯선 방식으로 들여다본다. 거대한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SF 재난 영화처럼 보이지만, 감독이 끝내 응시하는 것은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다.
나 감독은 이번 작품을 두고 "인간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우주적이고 신적인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다. 문제는 그 존귀함을 절대적인 자격인 양 착각하고 창조주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호프'는 바로 그 교만을 비춘다.
영화에서 인간은 외계 생명체를 마주하자 먼저 총을 겨눈다. 반대로 외계 생명체는 압도적인 힘을 가졌음에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누가 더 문명적이고 누가 더 야만적인가. 영화는 선악을 단순히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차갑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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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 스틸컷. (사진출처=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동시에 영화는 유독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인물들은 주먹밥을 먹고 닥쳐올 죽음을 앞두고도 총각김치를 곁들여 허기를 달랜다. 먹는 것 못지않게 배설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거대한 재난 한복판에서도 인간은 허기를 느끼고, 먹고 배설하며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비극의 시작이다. 재앙은 거대한 악당에게서 비롯되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이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은 목수 양배는 악인이 아니다. 그는 어린 외계 생명체를 야생동물로 오해했고, 공포 속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 총성 한 발은 작은 항구 마을을 넘어 전 지구적 재앙으로 번져 나간다.
감독은 "악행의 원인 제공자에게 반드시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호프'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악은 언제나 거대한 증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무지와 오해, 교만과 성급한 판단 역시 얼마든지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
성경에서도 죄는 단지 악한 행동을 뜻하지 않는다. 아담은 장차 올 모든 인류를 대표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선과 악 가운데 선택할 자유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고, 이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우리 가운데 들어왔다. 인간은 이후에도 자신들의 자리를 넘어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며 바벨탑을 쌓았고, 하늘 끝까지 닿으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았다.
'호프' 속 총성 한 발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인간의 작은 오판과 자기 확신이 어떻게 모두를 삼키는 비극으로 확산되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호프' 스틸컷. (사진출처=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후반부에는 성경 구절이 등장하고, 죽음과 부활, 종말의 불길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나 감독 역시 성경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차용했다고 밝혔다. 다만 '호프'는 성경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영화가 아닌, 기독교적 메타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희망을 새롭게 질문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화가 말하는 '희망'은 절망이 끝난 뒤 찾아오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붙드는 믿음에 가깝다.
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은 폭력이 충돌하고 난리가 난 세상에 대한 은유"라며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희망이 성사된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화 후반부에 히브리서 11장 1절을 배치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영화는 치밀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장 집요하게 인간을 응시한 나 감독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절망 앞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 '호프'는 섣불리 답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한계를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들 때, 절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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