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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 7관왕 에브리씽, 어떤 영화?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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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NEWS M| 작성일2023-03-13 | 조회조회수 : 2,2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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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3월 12일 제95회 아카데미에 11개 부분에서 후보에 올랐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하 에브리씽)’가 7개 부문에서 상을 거머 쥐었다. 작품상, 감독상(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양자경(미쉘 여)이 여우 주연상, 제이미 리 커티스와 키 호이 콴이 각각 남녀 조연상, 편집상, 각본상이 ‘에브리씽’에 돌아갔다.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호불호는 엇갈린다. 의미없는 B급 영화라는 데서부터 평점 만점을 준 유명 영화평론가도 있다. '에브리씽'을 좋은 영화로 평가한 사람들의 평에는 ‘가족간의 사랑’, ‘현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등등 다양하지만 이런 주제를 가진 영화가 어디 한 둘이었나? 게다가 요즘 영화 트렌드 중 가족간의 사랑 이런 것들은 관심을 끌만한 주제가 아니다. ‘기생충’(봉준호 감독)이나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의 사랑보다 가족의 협잡(挾雜)을 다룬 영화다.


    “몽땅 넣었는데 맛있는 마라탕 같은 영화”라는 어느 영화 기자의 한 줄 평이 가장 와닿는다. 이 영화는 세탁소를 경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가정이 멀티버스라는 이름으로 겪는 ‘몽땅’과 ‘정신없음’의 영화다. 따라서 스토리 라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SF적 요소는 자제되면서 주인공 가족이 다중 우주 즉 ‘멀티버스’를 ‘점프버스’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의 가장 인기있는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정신없는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의 특징을 무려 6가지로 나눴다.


    ‘세 차례의 인생 정산’, ‘모든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처구니 없는 시도들’, ‘베이글과 인형 눈알’, ‘최선의 에블린과 최악의 에블린’, ‘두 가지 싸우는 방식’ 으로 나누면서 최고의 영화로 만점을 줬다.


    이 글에서도 7가지로 나눠 봤다. 이것들이 하나의 메타 주제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1. 영화를 보는 내내 ’ 매트릭스’(감독 워쇼스키 형제- 그 때는 형제였지만 지금은 두 사람 다 성전환 수술을 해서 자매관계다)와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감독)가 생각났다. 매트릭스는 주인공이 사는 세상이 실재 세계가 아니고 게임속 가상세계라는 것을 알아 차린 후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와 상징계의 관계와 그에 따른 선택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반면 ‘에브리씽’은 ‘현실’ 또는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그냥 그런 영화다.


    ‘지구를 지켜라’로 장준환 감독은 천재소리를 들었지만 평단의 호평과 달리 흥행에는 실패했다. ‘에브리씽’에서 알파가 타고 있던 우주선 공간은 ‘지구를 지켜라’에서 외계인 백윤식 배우가 타고 있던 우주선 내부와 아주 흡사하다. ‘알파’란 극중 주인공 가족이 멀티버스를 떠 돌 때 우주선안에서 그 존재들을 조종하는 또 다른 그들인 메타 존재을 일겉는 말이다. 하지만 알파는 라캉의 실재계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상징계(가족 윤리)에 머문다. 실재계를 상징하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와 다른 점이다.


    ‘에브리씽’과 ‘지구를 지켜라’는 모두 B급 정서의 영화지만 하나는 성공했고 하나는 실패했다. 나는 ‘에브리씽’의 성공원인에는 정치적인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7번 참조)


    2. 고린도 전서 9:22이 생각났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에블린(양자경 분)을 비롯한 식구들이 멀티버스를 돌아다닐 때 그들이 마주치는 모든 상황(에브리웨어)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에브리씽)은 각기 다양하고 낯설고 위험하지만 그들이 다른 우주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다. 처리하는 방식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총론적으로 항상 같다. 극 후반부에 가서는 에블린을 죽이려는 적에게 사랑을 유발시키거나, 향수로 역공(?)을 가하는 방식도 같은 맥락이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했듯이 다양한 공간에서 시간은 작게 나뉘어지지만 그 방식이 같을 때 물리적 시간(크로노스)의 차이는 사라진다. 그래서 ‘올 앳 원스(모두 한 번에)’는 물리적 시간이 아닌 구원의 시간, 즉 카이로스다. 위 고린도 전서의 구절처럼 “몇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이다.


    에블린은 골치아픈 세금 문제와 이혼, 딸의 동성애 문제 등 난제가 가득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있는 현실세계가 돌아 다녀 본 다른 우주들 중 그나마 가장 나은 세계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생 다 그런거 아니냐며 관객을 ‘계몽’한다.


    아니다. 틀렸다. 그런 골치 아픈 일상은 행복일리 없다. 절대 행복은 주어지지 않음으로써 바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그것은 행복에서 이탈한다. 예를 들어 극중에서 주인공 가족은 노래방 기계 앞에서 잠시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그것은 국세청(IRS)에서 부정으로 경비처리한 물품으로 집중 조사의 대상이 된다. 에블린의 고통은 노래방 기계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중세 신학자 에르크하르트의 부정신학과 같다.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로 하나님을 경배해도 그것은 만들어진 언어를 이용한 칭송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피조물로서 경배된다. 언어로 경배된 하나님은 오직 진리 그 자체에만 속한 하나님에다가 하나의 이미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상징계의 언어로 설명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그래서 라캉도 죽음충동까지 감수하는 향유(주이상스)를 통하여 실재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3. 원이 강조된다. 베이글의 원 그리고 베이글 가운데의  공간, 국세청 직원이 그린 낙서같은 수많은 원들(그것은 겹쳐 있기 때문에 모든 원은 만난다는 멀티버스의 세계관이다). 인형 눈알은 아시아적 세계관이다.


    4. 인공지능 ChatGPT가 대중 친화적으로 다가오면서 챗지피티로 하는 놀이가 유행이다. 한 쪽에서 챗지피티로 부쩍 가까워전 인공지능의 시대를 준비하자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촘스키는 표절이라고 폄하한다. 작가 테트 창은 챗지피티가 JPEG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텍스트를 뭉뚱그리는 과정에서 넘겨짚게 되고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챗지피티 논쟁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댓글은 챗지피티가 등장함으로써 메타버스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 메타버스가 화두 아니었나?


    그와 마찬가지로 ‘에브리씽’은 멀티버스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5. 지금 현실을 즐기자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와 '영원회귀사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6. 영화는 국세청에서 시작해서 국세청으로 끝난다. 세탁소를 경영하는 사람이 노래방 기계를 경비처리하려는 것을 화근으로 영화는 시작했지만 국세청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세금을 피해갈 수 없듯이 멀티버스를 떠돌다가 잠시 돌아온 현실 세계는 항상 국세청 건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금의 엄중함, 또는 아시안 이민자 공동체를 향한 세금 탈루에 대한 폄훼들을 포함한 장면 같지만 국세청 백인 직원이 그린 투박한 원처럼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처럼 ‘회계부정’은 예수때부터 있던 이야기아닌가? 너무 교조적으로 살지 말라는 의미로 와 닿았다.


    천문학적 거액의 납세자들인 군산복합체, 다국적 식량기업들, 석유회사들 그들의 ‘정직한 세금’은 건강한 것인가?


    우방은 봉인가?


    7. 특이하고 기발한 영화지만 과연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만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카데미에서 다관왕이 예측되었기에 며칠 전부터 글을 준비하던 중에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양희 교수(대구대)의 ‘우방이 봉인가’라는 칼럼을 읽었다. 칼럼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35억달러를 투자해 2026년부터 미시간주에서 전기차 40만대분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되 기술과 장비, 인력은 중국 배터리회사 닝더스다이(CATL)가 제공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이를 두고 중국 언론 ‘차이나 타임스’는 이번 발표를 ‘밸런타인데이의 국제결혼’에 비유했다고 한다. 김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사태는 최근 재편 중인 세계 경제 질서를 신냉전으로 보는 시각에 죽비를 내리친다. 선별적 진영화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다른 나라에서는 중국과 교류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으면서 미국은 뒤, 아니 앞으로 중국과 거래하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과 일본의 바지춤만 잡고 있으면 만사가 형통하리라는 그 헛된 망상으로 북한과 중국과 소련 적대정책의 최전선 선발대로 자청하고 있다. 한겨레 칼럼에서 김양희 교수가  '우방이 봉인가?'라고 묻듯이 우방이라는 의미 자체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미국의 이율배반적 반중국 정서에 영화계라도 말려들지 않으려는 의지가 이번 시상에 작동했으리라고 믿는다. ‘에브리씽’에서 ‘적’들의 공격에 에블린이 맞서 싸우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멀티버스에서 싸우면서 이민 초기에 실제 경험했던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고 피자리아 광고판을 흔들던 에블린의 모습이 잠깐잠깐 스쳐 지나간다. 에블린은 그 때 광고판을 흔들던 현란한 손기술로 적들을 몰리친다. 적의 공격무기에는 국기봉에 돌돌 말린 성조기도 있다. 피자는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피자리아는 미국기업이고 길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광고판을 흔드는 사람은 중국계이민자다. 에블린은 이런 시간을 거쳐 마침내 세탁소를 차렸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멀티버스를 이야기 하기 전에 하나의 유니버스(지구)안에서라도 멀티를 인정하고 상생하자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시상식에 원격 참석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헐리우드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정치로 본 것이다. 아카데미 하면 떠오르던, 그래서 세상 모든 영화제의 상징이었던 핏빛 레드카펫을 거두고 와인색 카펫으로 바꾼 것도 이번 아카데미의 특징이다.


    김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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