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가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질문 [최기자의 객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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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스틸컷.(사진출처=유니버설 픽쳐스)
[데일리굿뉴스] 최상경 기자 = 2800년 전 쓰인 이야기가 다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미 수없이 읽히고 변주된 고전인데도 반응은 뜨겁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 이야기다.
놀런 감독 특유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영화 사상 처음으로 전편을 아이맥스(IMAX) 필름으로 촬영했고,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한 채 거친 바다와 장대한 자연을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 하지만 2800년 된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를 볼거리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디세이'는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원작으로 한다.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전쟁에 10년, 귀향에 다시 10년. 오디세우스 앞에는 외눈박이 거인과 폭풍우, 수많은 유혹과 죽음의 위기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원하는 곳에는 좀처럼 닿지 못한다. 그래서 '오디세이'는 승리한 영웅의 개선기라기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넘어지고 버텨내는 한 인간의 방랑기에 가깝다.
놀런 감독도 '영웅'보다 '인간' 오디세우스에 집중한다. 뛰어난 지략으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죽음이 남았다. 영화는 승리의 환희만큼이나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는 오디세우스의 얼굴에 오래 머문다. 고향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의식과 회한도 따라붙는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것은 더 큰 권력도, 또 다른 승리도 아니다. 이미 자신에게 있었던 가족과 고향이다. 세상을 떠돌고 숱한 고난을 통과한 뒤에야 자신이 진정 돌아가야 할 곳으로 향한다.
어쩌면 이것이 수천 년 전 이야기에 오늘의 관객이 다시 반응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려 한다. 성공과 성취를 좇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정작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그런 우리에게 20년을 헤맨 끝에 집으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오래된 신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작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현대인에게,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한다.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사진출처=유니버설 픽쳐스)
기독교의 시선으로 보면 그의 귀향은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진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단순히 고향까지 이동하는 모험이 아니라 한 인간이 변화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트로이로 떠났던 오디세우스와 20년의 방랑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지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도 폭풍과 죽음, 거듭되는 실패와 상실 앞에서는 무력한 인간일 뿐이다. 긴 방랑은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인시킨다. 승리 뒤에 남은 죽음과 자신의 선택이 남긴 상처 역시 외면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귀향길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게 된다. 자신의 지략과 힘만으로 운명을 개척하려 했던 영웅은 거듭된 고난 앞에서 낮아지고, 마침내 자신보다 더 큰 존재의 뜻을 받아들이며 그 앞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간다. 역설적으로 자신의 힘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고향을 향한 길도 열린다.
성경 속 인물들도 그러했다. 탕자는 모든 것을 잃고서야 아버지의 집을 떠올렸다. 자신의 죄와 마주한 다윗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도 실패의 자리에서 철저히 깨어진 뒤 다시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성경은 길을 잃고도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이'를 관통하는 '귀향'은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과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 땅의 나그네라고 고백하며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의 여정과도 같다.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가야 할 곳이 고향 이타카였다면 그리스도인에게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은 하나님이 계신 본향이다. 그곳을 향하는 길 역시 우리의 힘만으로 완주할 수 있는 여정은 아니다.
삶에는 폭풍이 있고 유혹이 있으며 그 속에서 때로는 방향을 잃는다. 자신의 뜻을 고집하다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긴 여정에 지쳐 주저앉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삶을 맡기며 다시 그분을 향해 걷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묘하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비춘다. 우리 역시 이 땅을 지나는 나그네다. 자신의 힘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삶을 맡기며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수없이 길을 잃고 헤매는 삶 속에서, '오디세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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