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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스승 암브로시우스가 쓴 "성직자의 의무"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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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당당뉴스| 작성일2026-07-13 | 조회조회수 :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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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의무>, 암브로시우스, 아카넷, 2020) 


암브로시우스는 도저히 모를 수 없는 인물이다. 어거스틴의 스승으로 불리기도 하고 굉장히 유명한 성인이기에 그가 쓴 성직자의 의무라는 책은 성직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유효하리라 생각하며 책을 보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초대교회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암브로시우스의 가르침이 오늘날 상황과 문화와 맥락에 어느 정도 맞을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옛 격언을 듣는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넘기고자 하였다. 


물론 좋은 이야기가 많이 있고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말이 많다. 주된 내용은 아무래도 옳은 것과 이로운 것을 구분하는 것인데, 오늘날 이로운 것이 좋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사실상 옳음과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이제 암브로시우스는 이로운 것을 옳은 것과 연관시키고자 한다. 그 말은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찬송가에서도 옳은 길을 따르라 주의 길을 이라는 찬양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우리에게 좋은 것은 우리에게 이로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은 옳은 것이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암브로시우스도 좋은 길의 의미를 옳은 길로 해석한다. 좋은 것이 이로운 것이라는 점에서 옳은 것과 이로운 것은 동일하다. 그래서 책 제목이 성직자의 의무라고 말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체로 상식의 면에서 들여다봤을 때 좋은 것을 이로운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유는 윤리의 측면에서 해석할 때 좋은 것을 쾌와 불쾌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는 스피노자에서부터 니체까지 이어져 오는 경향이다. 물론 역사적인 면에서 암브로시우스와 이 둘 철학자까지 시간적 간격이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옳은 것을 이로운 것과 좋은 것의 차이로 둔다는 점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이로운 것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큰 문제는 없다. 나에게 좋은 것은 이로운 것이고 나에게 나쁜 것은 이롭지 못한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이 설령 옳은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쾌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에게 있어서 성직자는 이로운 것이 곧 옳은 것이어야 함을 말한다. 이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찬송가에서도 ‘옳은 길을 따르라 의의 길을’ 이 있는 것처럼 옳은 길은 이로운 길이다. 그 이로운 길에 우리의 불쾌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길을 따라갈 때 그것이 의로운 길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래서 성직자의 의무는 나에게 이로운 것을 옳은 것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옳은 길인 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그 길이 이로운 것임을 믿어야 한다. 설령 고통의 길, 좁은 길을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로운 길임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길은 좋은 길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성직자의 의무가 아닐 수 없다. 


이경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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