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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들이여 바른 설교를 위해 이것만은 지켜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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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아이굿뉴스| 작성일2020-12-02 | 조회조회수 : 11,5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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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 전통의 책 ‘2021 예배와 설교 핸드북’ 출간

    정 교수 “이번 호 끝으로 후배들에게 바통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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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장복 교수의 방에는 ‘성언운반일념’이라고 적힌 서예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정 교수는 설교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운반’ 하는 사람으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1981년 ‘예배와 설교 캘린더’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해마다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소개하고 예배의 자료를 묶어온 ‘예배와 설교 핸드북’이 올해로 37년째를 맞았다. ‘예배와 설교 캘린더’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40년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배‧설교학의 대가 정장복 교수(전 한일장신대 총장)는 저자로서 생의 절반 가까이를 이 일에 헌신해왔다. 은퇴 후에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통해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정 교수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이번 호를 끝으로 이 일에 손을 떼고 후배들에게 귀한 사명의 바통을 넘긴다. 그래서인지 이번 호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고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정장복 교수는 ‘고별의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호의 서문을 장식했다. 글에는 ‘예배와 설교 핸드북’을 향한 정 교수의 애정과 책을 통해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정 교수는 “너무 오랫동안 홀로 매진한 것이 자랑거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며 “이제 노병이 선두에서 휘두르던 지휘봉을 사랑하는 후학들에게 넘겨주려고 한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얼굴과 얼굴, 얼굴과 활자를 넘어 인류가 얼굴과 전자기기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던 마샬 맥루한의 말을 언급하면서 “교회 역시 최근에 온라인 워십을 경험하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속도로 시대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4차 산업혁명이 선뜻 다가옴으로 우리 목회자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무서운 변화 가운데서 탈선이 없는 예배와 설교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큰 과제인데 이 대열에 함께 서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를 아끼시고 선한 길을 늘 제시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할 뿐”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끝으로 “나의 바통을 받게 될 신실하고 지혜로운 사랑하는 나의 문제(門弟)들이 새 시대에 걸맞은 이 사역을 잘 감당하리라 확신한다”며 “지난 40년간 보내주신 여러 독자들의 사랑과 격려가 앞으로 이어질 본서에 쉼 없이 이어지리라 확신한다”고 감사를 전했다.


    설교에 목숨을 다하는 그대에게


    책은 크게 5부로 나뉘어 구성됐다. ‘주일 낮 예배‧설교 지침’을 담은 3부와 ‘절기 설교를 위한 지침’을 담은 4부, ‘52주 저녁 예배를 위한 주해 설교’가 담긴 5부가 책의 전반적인 분량을 차지한다. 전반부인 1부 ‘예배를 위한 지침’과 2부 ‘바른 설교 사역을 위한 지침’은 분량은 적지만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들이 엄중하게 소개된다. 매 호마다 서문 바로 뒤에 실리는 ‘한 해를 돌아보는 글’과 ‘다가오는 1년의 비전을 담은 글’도 영적 통찰력과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바른 설교 사역을 위한 지침’ 가운데 정 교수가 ‘설교에 목숨을 다하는 그대에게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라는 글이 큰 울림을 전한다.


    “집필을 마감하면서 느끼는 감회는 실로 크다. 설교를 제2의 생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마지막 부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2007년 랜디 포시 교수가 생각난다. 그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이 되어 마지막으로 전심을 다했던 강의가 책으로 출판되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감명을 주었다. 필자는 본서의 작업을 마지막으로 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사랑하는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부탁은 어떤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추려본다. 그리고 간절한 부탁을 하고 싶다. ‘부디 하나님이 소중히 아끼시고 교인들이 우러러보는 설교 사역을 충실히 수행해달라.’”


    설교자들에 전하는 ‘마지막 부탁’


    ‘설교에 목숨을 다하는 그대에게 드리는 마지막 부탁’은 위치상으로 책의 전반부에 담겼지만 정 교수가 ‘예배와 설교 핸드북’ 집필을 마감하면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바른 설교를 위해 설교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담고 있는데, 총 10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설교자의 정체성을 확립하라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교단에서 목사를 안수하여 세울 때 어김없이 하는 질문이 있다. 내용은 소명 받은 몸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질문과 답이다. 목사가 교인들을 목회할 때는 철저하게 섬기는 종으로서 그 소임을 다해야 한다. (중략) 말씀의 운반자로서 그 정체성이 뚜렷해야 한다. 분명하고, 과감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전권대사’의 소임을 수행해야 회중이 그 입에서 나오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차원이 다른 맑은 영성을 갖추라


    설교자는 남달리 성스러운 반열에 속한 특별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중략) 소명을 수행하는 데는 육적인 속성에 쫓기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삶의 길을 갈고 닦아야 한다. (중략)자나 깨나 지존자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의 뜻을 새기면서 그 말씀을 어떻게 운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성 밖의 사람들이 내뿜은 악취가 그 몸에서는 흔적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맑은 양심에서 주님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인성‧지성‧영성, 그중에 제일은 인성이다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앞바퀴는 인성의 바퀴이고, 뒤는 지성과 영성의 바퀴이다. 설교자가 기적을 발휘하는 영성과 최고의 지성을 갖추었다 해도 그 사람됨이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허공을 달린다. 자신의 출세와 탐욕을 채우기 위해 교회를 등에 업고 상식 이하의 언행을 일삼는 설교자, 또는 갖추어야 할 교양이 수준 이하인 설교자는 설교 사역을 수행하는 데 성공하기 힘들다.


    본문을 떠난 탈선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이 밝고 엄격하고 정중하게 주님의 백성들에게 다가가도록 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이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나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설교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설교 현장에는 본문을 읽기는 하되 설교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고, 설교자의 지식과 경험과 판단과 구수한 예화만 나열되는 비극이 속출하고 있다.


    설교자의 삶과 설교 내용이 일치되도록 하라


    하나님은 언제나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와 일치된 삶을 이어가기를 원하신다.(중략) 에덴동산의 선악과나무는 한 그루였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선악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중략) 자기를 지켜내는 승자만이 설교의 무대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슬픈 종말을 고하고 쓰러진다. 자신이 외친 메시지를 자신이 지키지 않았을 때 회중의 냉소만이 가득하게 된다.


    제발 설교를 목회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


    설교자가 목회의 현장에서, 특히 제직회나 당회에서 수용되지 않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설교라는 자신의 독무대에서 열기를 품는 모습은 초라함을 넘어 가엾게 보인다.(중략) 설교는 오직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운반하는 가장 성스러운 사역이다. 설교에서 설교자가 등장하고 자기주장을 펼치고 맹종을 강요할 때, 그 설교는 패망의 길을 걷는다.


    설교 문장의 주어를 정확하게 파악하라


    공적인 언어생활에서의 문장의 구성은 반드시 주어를 갖추어야 한다. 이제 자신의 설교를 재경청하면서 “원합니다”, “믿습니다”, “소원합니다” 등등의 주어를 찾아 그 자리에 1인칭 단수인 ‘나’를 넣고 설교를 다시 들어보면, 설교자가 얼마나 많이 주어로 등장하는지를 보게 된다. 또는 하나님, 주님, 예수님, 성령님을 주어로 사용하여 보라. 설교가 설교자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쉽게 구분 짓는 것은 문장의 주어에서 판가름 난다.


    인간의 찬사보다는 하나님의 찬사에 관심을 두라


    설교 현장에서 뜨거운 반응은 두 형태이다. 하나는 설교자가 ‘축원합니다’라는 종결어에 힘을 주면 회중은 ‘아멘’의 함성을 지른다. 또 하나의 반응은 설교자가 위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회중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며 또렷한 눈길로 주목하면서 감격한다. 한국의 많은 설교자들은 전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위적으로 유도하여 응답하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우렁찬 ‘아멘’만 있으면 만족해한다. 이제 성숙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찬사에 귀를 기울이고, 회중은 정중하게 경청하고 감사하는 설교 현장이 가꾸어져야 한다.


    설교 중에 겸손한 언어표현은 금물이다


    어떻게 운반하느냐에 따라 신언(神言)이 되기도 하고 인언(人言)이 되기도 한다.(중략) “제 생각은 …라고 여겨집니다.” “제 판단에는 …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러한데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두는 공손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즐겨 쓰는 언어이다. 이제 설교자가 이러한 언어를 즐겨 쓴다고 가정해 보라.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은 이상과 같은 불확실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설교 언어는 분명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설교 사역은 훨씬 어려워진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사회의 각 분야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별히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면서 교인들이 달라지고 있다. 자신이 속한 교회가 아닌 유명한 설교자들을 자유롭게 찾아 만날 수 있다는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가 일고 있다.(중략) 이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등장하여 설교자들에게 긴장을 안겨준다. 그 결과 설교자들은 과거와는 달리 설교에 대한 성찰과 함께 향상을 가져와야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설교의 향상은 모범이 되는 설교를 경청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설교의 기본적인 원칙과 이론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손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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