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의 한국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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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아이트교회가 한국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중 구호사업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으니 1953년의 일이었다.
글쓴이가 사는 곳의 이웃에 있는 한 메노나이트 교회
1983년 정초 남미 아르헨티나의 해방신학자 Jose Miguez Bonino교수의 집중 세미나에 참석하였을 때 우연히 식사 테이블에 합석하였던 Robert Gerber라는 메노나이트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브라질의 수도 Brasilia에서 선교사로 일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는 가운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 그러냐?" 하면서 실은 자기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한국 대구에서 선교사로 구제회(救濟會) Relief Society라는 메노나이트 기관에서 일하였다고 한다. 나는 한국 교회사를 공부하였지만 메노나이트 교회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는 사실은 들어 본 적도 없어서 놀라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조사 연구하여 글로 남겨서 한국 교회 선교 역사에 한 페이지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메노나이트 선교 사업을 관장하는 Mennonite Cetral Committee(MCC)가 필라델피아에서 가까운 도시 Lancaster에 있기 때문에 그 곳에 역사자료실이 있나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Lancaster에는 없고 Indiana 주에 있는 MCC에 역사자료실이 있다고 한다. 그곳은 멀어서 쉽게 갈 수 없기에 인디아나 MCC에 편지로 문의하여 메노나이트 교회의 한국 선교 사업에 관하여 알고 싶다고 하였다.
1983년 4월 21일자로 아래와 같은 답이 왔다.
MCC 연례활동 보고서(Annual Workbook Report)를 뒤져보니 해마다 MCC의 활동 상황을 간단히 보고한 것뿐이어서, 내가 직접 인디아나 MCC 역사자료실에 가서 그곳 파일을 탐구할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한다. 동아시아 담당 간사(The Secretary for East Asia)는 Bert Lobe라는 분인데 마침 출타 중이어서 그 분이 돌아오면 더 자세히 물어서 한국 선교 자료의 출처를 알아 보겠다 하였다. 자기가 조사한 기록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하여 여기 완역해 본다.
“MCC가 한국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중 구호사업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으니 1953년의 일이었다. 이 구호사업은 주로 급식소(feeding station)를 통하여 우유와 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나의 기억에도 6.25 전쟁 중 한국 곳곳에 우유죽을 나누어 주는 곳이 있었다.) 이 시기에 MCC가 시작한 세 가지 중요한 사업은 1) 메노나이트 직업학교 직업 교육 사업, 2) 기독교 어린이 돌봄 교육 훈련 프로그램 사업(the Christian Child Care Training Program). 그리고 3) 어려운 가정 어린이 보조 프로그램 사업(the Family Child Assistance Program) 등이었다. 그 밖에도 메노나이트 재봉 교육소 프로젝트(Sewing Project)와 메노나이트 지역사회 프로젝트 사업(the Mennonite Community Service Project) 도 있었다.
1. 메노나이트 직업학교는 경상북도 남쪽 대구시 근처 경산 지역의 고아 소년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농업 훈련학교(Agricultral Training School)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뒤에 다른 직업 훈련 교육을 시키는 사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 기독교 어린이 돌봄 교육 훈련 프로그램은 고아원이나 탁아소(Day Care Center) 또는 가정에서 어린이들을 어떻게 돌보아 보호 교육할 수 있는 지를 가르치는 탁아교사 훈련을 위하여 세운 프로그램이었다.
3. 그리고 가정 어린이 보조 프로그램은 최소 한 가정의 한 어린이를 교육하기 위해 재정적으로 보조해 주는 사업이었다.
4. 또 메노나이트 재봉 교육소는 전쟁 미망인이나 장애인 남편을 가진 부인들에게 재봉 교육 훈련을 통하여 바느질을 하게 함으로써 가사를 돌보게 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이 재봉 교육소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재봉틀을 마련해 주는 일도 겸하여 하던 사업이었다.
5. 끝으로 메노나이트 지역사회 봉사 사업은 농업 기술 훈련에 중점을 둔 사업이었다.
1965년에 이르러 MCC의 “구호” 사업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할수 있게 됨에 따라 “재건” 사업으로 바뀌었다. 그 뒤 1971년이 이르러 MCC 한국 내 사업은 한국인 손에 넘기었거나 경우에 따라 폐쇄함으로써 끝막음 하였다." (1983년 4월 21일자 일기 참조)
현재(2026년) 한국에 한국 메노나이트 교회연합(Mennonite Church South Korea)이 있을 정도로 메노나이트 교회가 생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현재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은 Mennonite Country여서 메노나이트 사람들과 서로 이웃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젖소 목장을 경영하는데 젖소 먹이를 위한 옥수수, 보리, 콩, 밀 등을 재배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밭에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젖소의 분뇨를 발효시켜 밭에 살포하여 농사를 짓는다. 소의 분뇨를 밭에 살포하면 그 냄새가 온 동네에 일주일 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우리 이웃의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 분들의 교회가 같은 동리에 있기에 주일 예배에 두 번 참석한 일이 있다. 우선 놀라운 것은 교회 주차장에 주차한 자동차의 색깔이 모두 다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교회에 들어가니 앞 쪽에 앉겠느냐 물어서 무슨 일인가 하였더니 연장자일수록 앞좌석에 앉는다는 것이다. 물론 남녀 좌석이 완전히 구분되어 오른쪽은 남성교우들이 앉고 왼쪽 좌석에 여성들이 모두 머리에 보닛(bonnet)을 쓴 채 앉아 있다. 남성들의 복장은 흰 와이셔츠에 멜빵이 있는 검은 색 바지를 입었고 여성들은 화려하지 않은 회색 계통의 길이가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교회당 안에는 강대상 외에는 사진이나 십자가 등 일체 장식품이 없다. 각 좌석에 성경 찬송가가 꽂혀있다. 악기도 없이 찬송가를 찬양하는데 온 회중이 4부로 노래한다. 기도할 때는 모두가 의자에서 내려와 마루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설교는 긴 편이어서 한 시간이나 계속하고 하루는 고린도 전서 15장까지 모두가 그 날 설교 본문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모두 일어서서 인사도 나누고 간단한 사귐의 시간을 갖는다. 매달 첫 주일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동리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교단에서 마련한 Living Water라는 전도지를 문고리에 꽂아 놓고 간다.
메노나이트는 아시는 대로 간단히 말하여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의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재세레파(Anabaptists) 사람들로서 신앙고백에 기초한 성인의 침례, 비폭력 평화주의,정교분리, 공동체 중심의 삶을 강조하는 개신교 그룹을 말한다. 메노나이트(Mennonite)라는 교단 이름은 지도자였던 네덜란드의 신학자 메노 시몬스(Menno Simons)의 신학을 따르는 자들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현재 공립하교 대신 자체의 학교가 있고 심지어 대학교도 있으며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Amish)와 달리 자동차나 농업관계 차량 등을 사용하고 간호사나 교사 등세속 직업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매주 목 금 토요일에만 여는 주말 마켓인 펜실베이니아 더취 마켓(Pennsylvania Dutch Market)은 유명하며 손님들로 북적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음식에 일체의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육류나 가금류에도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빵에도 방부제를 넣지 않아 일주일 내로 소비하여야 한다.
펜실베이니아 더치(Pennsylvania Dutch)란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럽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이민 온 사람들을 가리키고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독일어로 독일인을 가리키는 Deutsch라는 말이 잘못 전해진 와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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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직접 구워 파는 프렛젤(Pretzel)도 유명하다. 프렛젤의 유래애 대한 전설도 다양하다.
프렛젤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전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전설은 옛날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제빵사가 빵을 굽고 남은 반죽으로 장난삼아 구운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Pretzel이라는 이름의 어원을 살펴보면 “작은 상품”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고 당시 기도문이나 요리문답을 잘 외우는 아이들에게 상품으로 주었다고 한다. 꼬아서 만든 형상이 마치 양팔을 가슴에 십자로 얹고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며 세 구멍은 성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쨌든 프렛젤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펜실베이니아 동남부와 중남부 지방의 더치 컨트리에서 펜실베이니아 더치 사람들로 말미암아 미국에 소개되었다. 현재도 미국 내 프렛젤 생산 80%가 이곳 더치 컨트리 지역에서 생산·공급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시중에서는 지금도 아침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신호등에 걸린 사람들에게 노란 봉지에 넣어 팔고 있다.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과자 같은 두 종류가 있다. 모양도 꼬아 만들지 않은 스틱으로 된 것도 있고 많이 다양한 모습과 맛을 가지고 전 세계에 퍼졌는데 우리 한국에서도 Auntie Anne's 프렛젤이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인천 부평역사에도 있다. 특별히 프렛젤에 대하여 길게 설명한 이유는 그 이름과 유래에 대하여 알리고 특히 메노나이트 사람들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당당뉴스 최종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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