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23. 도오루의 과제: 빼앗긴 사랑을 용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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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빼앗긴 사람은 조용히 무너집니다. 분노가 크게 폭발하지 않아도, 마음의 방 하나가 갑자기 비어 버립니다. 도오루가 그랬습니다. 그는 요코를 지켜 주고 싶었습니다. 부모가 요코를 온전히 품지 못할 때, 그는 여동생의 아픔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는 더 어려운 과제 앞에 섭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 여동생을 용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여동생의 마음을 차지한 친구 기타하라를 용서할 수 있는가?
『빙점 해동』은 도오루의 과제를 매우 정확히 짚습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 여동생,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를 빼앗은 친한 친구를 용서할 수 있는가? 그들에 대한 사랑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도오루가 지가사키의 선생님과 함께 생각하며 답을 찾아야 할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도오루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기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요코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보았습니다. 부모가 요코를 죄와 복수의 그물 속에 가두었을 때, 도오루는 요코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했습니다. 최순육의 연구도 도오루가 부모의 언쟁을 듣고 요코의 사정을 알게 된 뒤, 억울한 마음으로 요코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결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점차 이성에 대한 감정으로 커지고, 요코를 위해 자신은 오빠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친구 기타하라를 소개하게 됩니다.
여기서 도오루의 사랑은 아름답고도 위험합니다. 그는 요코를 위해 물러서려 합니다. 그러나 물러선 뒤에도 마음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친구를 소개했지만, 막상 요코와 기타하라가 서로를 향해 움직일 때, 그는 자기 안의 질투를 만납니다. 사랑이 정말 사랑이 되려면, 상대가 나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도오루에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빙점 해동』은 도오루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요코에게 오팔 반지를 사서 돌아온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는 요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요코가 기다리던 사람은 기타하라였습니다. 도오루는 수신자 이름이 없는 쪽지를 남기고 지가사키로 떠납니다. “갑자기 눈이 없는 설날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그 쪽지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외로움을 담은 작은 유서처럼 보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은 사람을 시험합니다. 그 외로움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이 되면 성숙으로 갈 수 있지만, 자기연민이 되면 복수와 냉소로 갑니다. 게이조는 외로움과 질투를 복수로 만들었습니다. 나쓰에도 자기 고통을 요코에게 전가했습니다. 도오루 역시 같은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빙점 해동』은 다행히 도오루에게 요코와 나쓰에의 사랑, 그리고 지가사키의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외로움을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하지만, 도오루에게는 그 외로움을 함께 생각해 줄 사람이 있었습니다.
형제애는 소유가 아닙니다. 오빠의 사랑은 여동생을 지키는 사랑이지, 여동생의 마음을 소유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도오루는 요코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나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따뜻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나에게만” 말하라는 마음도 숨어 있습니다. 『빙점 해동』은 도오루가 오빠이고, 부모이고, 애인이기를 바랐다고 해석합니다. 바로 그 과도한 사랑이 도오루의 죄입니다.
복음은 사랑을 정화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내 뜻대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길을 걸어가도록 축복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빼앗긴 사랑 앞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선택받지 못했을 때도 그 사람의 행복을 미워하지 않는 것, 내가 밀려났다고 느낄 때도 친구를 원수로 만들지 않는 것, 이것이 십자가 아래서 배우는 사랑입니다.
도오루의 과제는 우리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사랑했으나 선택받지 못한 사람, 아꼈으나 나를 떠난 사람, 내게 소중한 것을 가져간 친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빙점』은 말합니다. 사랑은 받을 때보다 빼앗긴다고 느낄 때 그 진실이 드러납니다. 도오루의 빙점은 거기 있었고, 우리 마음의 빙점도 자주 그곳에 있습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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