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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에는 가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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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10-26 | 조회조회수 : 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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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아프다는 소리가 넘쳐납니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가시’입니다. 무심코 던진 말의 가시, 차가운 눈빛의 가시, 거친 몸짓의 가시에 찔린 이들이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위로하려고 건넨 말이 오히려 누군가의 마음을 찌르는 가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지난주 우리는 판단하지 않는 공동체, 서로의 가시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교회를 함께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두꺼운 마음의 갑옷을 껴입는 한, 우리는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습니다. 갑옷을 입은 채로는 포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판단하지 않는 공동체, 격려하는 공동체는 다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라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가시를 없애는 진짜 방법은 갑옷을 더 두껍게 입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커지는 것’입니다. 나무가 어리고 줄기가 가늘 때는 짐승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웁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뿌리를 깊이 내리고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면 가시는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춥니다.


큰 나무에는 가시가 없습니다. 짐승이 몸을 부딪쳐도 꿈쩍하지 않을 만큼 든든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무는 자기를 지키려고 가시를 세우는 대신,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를 내어주며 다른 생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도 믿음의 큰 나무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키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근육은 무게를 견디며 찢어지고 다시 아무는 과정을 통해 자랍니다. 서운함을 한 번 더 참아낼 때, 오해를 한 번 더 이해로 바꿀 때, 받은 상처를 품고 기도할 때 마음의 근육은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나무의 나이테에도 비바람과 세월을 견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 비바람은 나무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더 깊이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믿음의 키를 키워야 합니다. 나무가 위로 자랄수록 땅 위의 작은 소란은 멀어지고 더 넓은 하늘을 보게 됩니다. 눈앞의 사람과 상황만 보면 서운하고 억울한 일투성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그 사람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이요, 그 일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과정임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키가 자랄수록 가시를 세울 일은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은혜의 품을 넓혀야 합니다. 큰 나무가 넓은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것은 가지를 멀리 뻗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허물과 가시를 덮어 주셨음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의 가시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 13:32)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의 품이 넓은 사람 곁에는 지친 이들이 찾아와 쉬어 갑니다.


낯선 이민의 땅에서 오랜 세월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을 견뎌 온 우리 교회에도 어느덧 51개의 나이테가 새겨졌습니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누군가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믿음의 키를 높이고, 은혜의 품을 넓혀서, 이웃을 넉넉히 품고 사랑하는 큰 나무 같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창민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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