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15.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게이조 앞에 놓인 불가능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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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말씀 가운데 어떤 말씀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삶 속에 들어오면 칼이 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멀리 있을 때는 고상한 이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수가 얼굴을 가지고, 이름을 가지고, 내 상처의 중심에 서게 될 때, 이 말씀은 인간의 자존심과 자기 의를 찌르는 복음의 칼날이 됩니다.
『빙점』에서 게이조가 마주한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빙점 해동』은 누가복음 6장 27절의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가 『빙점』 전반부의 핵심어라고 설명합니다. 게이조는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읽지 못합니다. 말씀은 그에게 계시가 되어야 했으나, 오히려 자기 자존심과 복수를 정당화하는 유혹이 됩니다.
게이조는 의사이며,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평온하지 않습니다. 아내 나쓰에가 무라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이, 딸 루리코가 살해됩니다. 게이조의 슬픔은 곧 분노가 되고, 분노는 복수가 됩니다. 그는 살인범의 딸이라고 믿은 요코를 입양하여 나쓰에가 키우게 합니다. 겉으로 보면 원수의 딸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쓰에를 벌하기 위한 정교한 복수입니다. 최순육의 연구도 게이조가 나쓰에에 대한 복수심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고 분석합니다.
여기서 『빙점』의 깊은 비극이 시작됩니다. 게이조는 말씀 앞에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자기 능력의 증명으로 삼으려는 사람입니다. 『빙점 해동』은 쓰가와 교수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만큼 어려운 것은 없으며,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 것과 달리, 게이조는 이 명제를 자기가 실천할 수 있는 용사처럼 생각하고 싶어 했다고 해석합니다. 말씀 앞에서 깨어져야 할 사람이, 오히려 말씀을 통해 자기 의를 세우려 한 것입니다.
도오루가 전쟁 영화를 본 뒤 “적은 누구냐”고 묻는 장면은 이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게이조는 “적이란 가장 사이좋게 지내야 할 상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곧 나쓰에와 무라이를 떠올리며, 적은 사랑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싸워야 할 상대라고 말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간격, 입술의 신앙과 마음의 본심 사이의 간격이 게이조의 빙점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인간의 위선을 예리하게 압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 미움을 품고, 용서를 말하면서 복수를 설계합니다. 성경구절을 수첩 표지에 금문자로 새길 수는 있지만, 그 수첩 안에는 미워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을 수 있습니다. 『빙점 해동』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구체적 현실이 없을 때는 이상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실천하려 하면 피투성이의 싸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복음주의 신앙은 원수 사랑을 감상적 윤리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죄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악이라 부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죄의 심각성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동시에 하나님이 원수 된 인간을 사랑하신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인간들을 그 아들 때문에 용서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빙점 해동』은 게이조가 요코를 사랑하기 어려워하는 장면을 해석하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그 범인을 자기 자녀로 삼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인간의 도덕적 영웅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불가능성을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게이조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지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늦게 깨닫습니다. 복수는 나쓰에를 찌른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찔렀습니다. 최순육은 게이조가 복수하려 했지만 가장 처절하게 복수당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후회하는 장면을 인용하며, 그의 내면 갈등을 죄의 인식과 연결합니다.
오늘 우리도 게이조와 다르지 않습니다. 원수가 추상적일 때 우리는 쉽게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나를 배신한 사람, 내 자존심을 무너뜨린 사람, 내 자녀를 아프게 한 사람, 내 인생의 상처가 된 사람 앞에서 이 말씀은 갑자기 불가능해집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원수 사랑은 내 결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노력만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원수였으나 사랑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빙점』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습니다. 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더 깊이 말하면, 나는 하나님의 용서 없이는 원수 사랑을 시작할 수도 없는 죄인임을 아는가? 게이조 앞에 놓인 이 불가능한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신앙 앞에도 놓여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 없이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진실로 데려가기 위해 주어진 복음의 칼날입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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