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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12 도야마루 사건: 구명복을 내어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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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9-21 | 조회조회수 : 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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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말보다 먼저 몸으로 증명됩니다. 특히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인간의 사랑은 가장 정직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내 생명을 지키기에도 급한 순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내 것을 내어줄 수 있는가? 『빙점』 속 도야마루 사건은 바로 이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빙점 해동』은 도야마루 조난 사고를 『빙점』의 핵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으로 읽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처음부터 작품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문 연재 분량 조절이 필요해졌을 때, 남편 미우라 미쓰요가 1954년 도야마루 조난 사고를 넣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미우라 부부는 하코다테까지 가서 생존자 후치가미 다카시 교수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후치가미 교수는 학생들과 혼슈로 스케치 여행을 가던 중 조난을 당했고, 일행 중 교수만 살아남았습니다. 


도야마루 사건의 중심에는 선교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빙점 해동』은 배가 크게 기울고 선실에 물이 들어왔을 때, 세 명의 선교사가 승객들에게 구명복을 나누어 주고, 아이들과 여성들이 구명복을 입도록 도왔으며, 구명복이 없는 젊은이에게 “당신에게 미래가 있으니까”라며 자기 구명복을 양보했다고 전합니다. 확실한 증언으로 모든 세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우라가 이 사건을 작품 속에 배치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빙점』의 주제는 원죄입니다. 그러나 원죄만 있다면 이 소설은 너무 차갑습니다. 인간은 욕망하고, 질투하고, 복수하고, 자기 의에 갇히며,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상처 입힙니다. 게이조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알지만, 실제로는 요코를 복수의 도구로 삼습니다. 나쓰에는 아름다움을 우상처럼 붙들고, 요코는 자기 존재의 수치 앞에서 얼어붙습니다. 그런데 도야마루 장면은 이 차가운 인간 세계 한복판에 전혀 다른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충격을 주었습니다.


선교사는 울고 있는 여인에게 묻습니다. “왜 그러세요?” 구명복 끈이 끊어졌다고 울자, 그는 말합니다. “내 것을 줄게요.” 그리고 “당신은 나보다 젊어요. 일본은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야 해요”라고 말합니다. 『빙점 해동』은 이 장면을 두고, 우는 사람의 이유를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절반쯤 구조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참된 사랑은 먼저 고통의 이유를 묻습니다. 그리고 자기 것을 붙들기보다 내어줍니다. 


이것은 게이조의 사랑과 정반대입니다. 게이조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기 상처를 중심에 둡니다. 용서를 생각하지만 복수를 실행합니다. 아이를 받아들이지만 참된 수용이 아닙니다. 『빙점 해동』은 게이조의 행위를 “거짓 용서와 거짓 수용”이라고 읽습니다. 그는 원수의 아이를 자녀로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수를 위해 받아들였습니다. 


반대로 도야마루의 선교사는 말로 사랑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구명복을 벗습니다. 사랑은 여기서 해석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신학 용어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게이조는 훗날 그 선교사를 떠올리며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상대에게 내어 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슬로건만으로 되지 않으며, 그 선교사는 말뿐 아니라 더 생명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면이 『빙점』의 핵심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원죄는 인간이 자기중심에 갇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은 자기중심을 벗어나 타자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원죄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밀어내는 마음”이라면, 아가페는 “네가 살도록 내가 내어주는 마음”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사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심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원수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도야마루 사건은 『빙점』 안의 작은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용서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 줍니다. 사랑을 논하지 않고 입혀 줍니다. 인간이 얼마나 얼어붙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소설 한가운데서, 하나님 사랑의 온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오늘 교회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구명복을 나누어 주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내 구명복만 움켜쥐는 공동체인가? 울고 있는 사람에게 “왜 그러세요?”라고 묻는가, 아니면 그의 울음을 방해물처럼 여기는가? 『빙점』은 말합니다. 용서는 말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자리에서 비로소 진실해집니다. 도야마루의 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한 선교사가 벗어 준 구명복은 『빙점』 전체를 녹이는 은총의 표지가 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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