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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현재의 절망으로 미래를 닫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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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9-18 | 조회조회수 : 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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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의 대장군 나아만이 나병으로 고통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큰 용사였지만 당시로서는 고칠 수 없는 병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을 아끼는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그를 고쳐 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며 이것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구실이 아닌가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을 자신에게 오게 했고, 마침내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치유해 주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의 시작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한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 온 이 소녀는 절망에 빠진 나아만에게 사마리아의 선지자를 찾아가면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한 어린 소녀가 닫혀 있던 나아만의 절망적인 미래에 작은 희망의 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존재입니다. 현실이 평안할 때는 미래가 현재의 연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쟁과 갈등, 질병과 죽음, 실패와 절망을 만나면 미래는 갑자기 닫혀 보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러한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을 말합니다. 성경의 소망은 현실의 고난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현재의 절망을 넘어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희망의 신학』에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종말론적 소망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종말론은 신학의 마지막에 덧붙이는 ‘마지막 일들’에 관한 부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된 미래가 오늘의 삶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미래는 현재 속으로 다가와 현실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리스도인은 그 약속 때문에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미래를 향하여 살아갑니다. 소망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약속된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현재를 미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역사의 의미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역사의 마지막, 곧 하나님의 종말론적 완성에서 비로소 역사의 전체적인 의미가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가 완전히 감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말의 완성이 역사 속에 미리 나타난 ‘선취’(prolepsis)입니다. 하나님의 미래가 현재 속에 미리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실패만으로 역사의 마지막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미래가 우리 앞에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키어니(Richard Kearney)는 이러한 미래의 문제를 ‘가능성’의 해석학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존재할 수도 있는 하나님』(The God Who May Be)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닫힌 현실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어 주시는 분이라 사유합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의 가능성까지 닫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키어니는 하나님을 이해할 때 존재(esse)보다 가능성(posse)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면서, 하나님을 정적인 형이상학적 존재로만 기술하기보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가시는 동적인 분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키어니는 출애굽기 3장 14절의 하나님의 이름을 전통적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I am who I am)라는 번역에만 한정하지 않고, “나는 내가 될 자가 될 것이다”(I shall be who I shall be)라는 미래지향적 의미로 읽습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현재 무엇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무엇이 가능할 수 있는가”입니다. 가능성은 현실을 부정하는 공상이 아니라, 닫힌 현실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해석학적 지평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다시 읽으면 놀라운 미래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고, 나아만 장군은 당시 약소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라는 민족적 절망 속에서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고, 갈라진 백성이 하나가 되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 눈물과 죽음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은 놀라운 소망의 근원입니다. 현실에서 보면 마른 뼈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미래에서 보면 다시 살아날 백성이며 큰 군대입니다. 성경은 현재의 고통을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현재가 미래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몰트만은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를 소망하게 하고, 판넨베르크는 그 미래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이미 선취되었다 말하며, 키어니는 닫힌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게 합니다. 세 사람의 언어와 신학적 강조점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현실만으로 미래를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절망을 절망이라고 말하고,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말은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성경적 소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미래 때문에 오늘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현재의 절망으로 미래를 닫지 맙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소망하고, 그 미래를 향하여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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