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11. 사이시 쓰치오: 버려진 자의 어둠
페이지 정보
본문
살인자는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한 아이를 죽인 죄는 결코 미화될 수 없습니다. 루리코를 죽인 사이시 쓰치오는 용서받기 이전에 먼저 자기 죄 앞에 세워져야 할 인간입니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는 그를 단순한 흉악범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묻습니다. 한 인간은 어떻게 그런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가? 사랑받지 못한 인간은 어떻게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 되는가?
『빙점 해동』이 “사이시 쓰치오와 루리코의 이야기”를 미우라 문학의 원풍경으로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 장면이 아니라, 미우라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죄와 고난, 외로움과 사랑의 상실, 그리고 구원의 필요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사이시의 인생은 처음부터 어둡습니다. 그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양친을 잃고, 1934년 홋카이도의 다코베야에 팔려갑니다. 이후 전쟁에 동원되고, 종전 직전 귀환하여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1946년에는 아내 고토가 딸 요코를 낳은 뒤 죽고, 같은 해 7월 루리코를 살해한 후 체포되어 자살합니다. 이 짧은 연표 안에 한 인간의 폐허가 들어 있습니다. 자연재해, 부모의 죽음, 가난, 노동 착취, 전쟁, 배우자의 죽음, 육아의 절망, 그리고 범죄. 사이시는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버려졌고, 팔렸고, 다쳤고, 잃었고, 끝내 자기 안의 어둠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죄를 이해한다는 것은 범죄를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고, 사회의 방치가 얼마나 잔혹하며, 사랑의 결핍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빙점 해동』은 사이시를 단순한 흉악범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치유하기 어려운 사람 그리움을 품었지만 사랑하지 못한 인간이며, 상처 입은 인간이 다시 상처를 주는 인간이 된 비극의 표상입니다.
여기서 루리코의 죽음은 더 깊은 의미를 얻습니다. 루리코는 나쓰에에게서 “밖”으로 밀려난 아이입니다. 사랑의 보호 밖으로 나간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밖에서 만난 사람도 사랑받지 못한 자 사이시였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어른이 사랑받아야 할 아이를 죽입니다. 이것이 『빙점』의 가장 차가운 빙점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빙점 해동』은 “쓰치오(土雄)”라는 이름을 “땅에 있는 남자”로 읽으며, 창세기의 아담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석합니다. 사이시는 단지 한 범죄자가 아니라, 땅에 속한 인간, 죄의 원리 아래 살아가는 인간의 원점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사이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버려진 자의 어둠이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 인정받지 못한 상처, 돌보지 못한 분노, 하나님께 묻지 못한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와 은혜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때, 인간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줍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이시를 정죄하면서도 그를 버리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가볍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가장 깊은 어둠 속의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이시 쓰치오는 『빙점』의 어두운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둠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빙점』의 은혜를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루리코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죄를 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버려진 인간을 방치한 세상의 죄도 보아야 합니다. 사이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자를 우리는 어디에 버려두고 있는가? 상처 입은 영혼이 더 약한 생명을 해치기 전에, 교회는 그 곁에 서 있는가? 복음은 바로 그 어둠 속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 이전글[이훈구 장로 칼럼] 숨을 쉴 수 있음이 감사하다 26.09.17
- 다음글[원목일기] 스위스 종교개혁 교회 답사기 2 - 로잔의 비레 26.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