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10. 루리코의 죽음: 한 아이의 죽음이 드러낸 가정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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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죽음은 한 가정의 끝이 아니라, 그 가정의 감추어진 심연이 열리는 문이 될 때가 있습니다. 『빙점』의 루리코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세 살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시작되지만, 그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쓰에의 욕망, 게이조의 질투, 사이시의 버려짐, 그리고 훗날 요코가 짊어질 운명을 한꺼번에 열어젖히는 비극의 문입니다.
루리코를 직접 죽인 사람은 사이시 쓰치오입니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는 이 사건을 단순한 범죄소설의 구조로 쓰지 않습니다. 나쓰에가 무라이와 만나고 있던 동안, 루리코는 사랑의 보호 밖으로 밀려납니다. 어머니의 품 안에 있어야 할 아이가 “밖”으로 나갑니다. 그것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닙니다. 마땅히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어른의 욕망 때문에 사랑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밖”은 자주 위험한 장소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였습니다. 보호의 눈길이 사라진 곳, 약한 생명이 방치되는 곳에서 죄는 기다립니다. 루리코가 집 밖으로 나간 순간,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나쓰에는 어머니이기를 멈추고, 자기 욕망에 유리한 쪽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빙점』이 말하는 죄의 본질이 있습니다. 사랑해야 할 존재를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실제 삶 속에서 드러나는 원죄입니다.
그러나 미우라의 시선은 나쓰에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이시도 단순한 괴물이 아닙니다. 그는 관동대지진, 부모의 죽음, 빈곤, 노동, 전쟁, 아내의 죽음이 겹친 버려진 인간입니다. 그의 죄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지만, 그의 삶은 사랑받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더 약한 생명을 해치는 어둠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루리코의 죽음은 한 악인의 범죄이면서 동시에 병든 사회와 버려진 인간의 비극입니다.
여기에 『빙점』의 무서운 신학이 있습니다. 죄는 한 사람의 마음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나쓰에의 욕망이 루리코를 밖으로 내몰고, 사이시의 버려진 생애가 그 아이를 삼키며, 게이조의 질투와 복수가 훗날 요코의 삶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한 아이의 죽음은 가정의 균열, 사회의 방치, 인간의 원죄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게이조는 딸을 잃은 아버지이며,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편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자리가 곧 의인의 자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루리코의 죽음 이후, 그는 살인범의 딸이라고 믿은 요코를 입양하여 나쓰에가 키우게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용서가 아니라 복수의 도구로 아이를 받아들입니다. 슬픔은 사랑으로 갈 수도 있지만, 복수로 얼어붙을 수도 있습니다. 게이조의 마음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빙점에 이릅니다.
루리코는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작품 전체에 남습니다. 요코는 루리코를 대신하는 아이처럼 들어오지만, 결국 루리코의 자리를 빼앗은 존재처럼 소외됩니다. 한 아이의 죽음이 또 다른 아이의 운명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도 루리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욕망 때문에 밖으로 밀려난 아이, 부모의 분노와 침묵 사이에서 방치된 아이, 사랑받아야 할 자리에서 외로움을 배운 아이가 있습니다. 교회도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약한 생명을 보호하는 울타리입니까, 아니면 그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어른들의 세계입니까?
루리코의 죽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 죄는 문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또한 말합니다. 가장 약한 아이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는 버려진 자의 자리로 내려오셨고, 사랑의 밖으로 쫓겨난 자들을 다시 아버지의 집 안으로 부르십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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