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8. 빙점의 용서
페이지 정보
본문
원한은 깊고 용서는 어렵습니다. 『빙점』에서 용서는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감상적인 화해도 아니고, 상처를 잊어버리자는 도덕적 권면도 아닙니다. 『빙점』의 용서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깊이 얼어붙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얼음을 녹이는 힘이 인간 안에서 나오는지 하나님에게서 오는지를 묻는 신학적 질문입니다.
게이조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괴로워합니다. 그는 그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딸 루리코를 잃은 고통, 아내 나쓰에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 안에 자라난 복수심이 그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그는 원수의 딸이라고 믿은 요코를 입양하지만, 그것은 참된 용서가 아니라 나쓰에를 벌하기 위한 차가운 복수였습니다. 용서의 형식을 취했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사랑이 아니라 심판이 있었습니다.
요코도 용서를 갈망합니다. 그는 자기 존재가 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니라, 자기 안에 흐른다고 믿게 된 죄의식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는 누군가 자기에게 “용서한다”고 말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만으로는 그 깊은 수치가 녹지 않습니다. 요코의 고통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여 줍니다.
최순육의 연구는 용서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며, 먼저 죄를 인식하고 그 슬픔을 느낀 자가 상대를 향한 긍휼과 연민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 해석은 『빙점』의 인물들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자신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은 화해의 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군국주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전쟁을 성전으로 가르쳤던 자기 죄를 슬퍼했습니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향해 저지른 침략과 폭력의 죄를 슬퍼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원죄를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슬픔은 무릎이 되었고, 기도가 되었고, 문학이 되었고, 평화를 향한 증언이 되었습니다.
『빙점 해동』의 한국어판 서문은 미우라 문학이 한국과 일본 사이, 더 넓게는 동아시아 안에서 평화와 우정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이 문장은 『빙점』을 읽는 한국 교회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문학은 때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작은 다리가 됩니다. 한 작가의 무릎은 한 시대의 화해를 위한 작은 제단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미우라 아야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문학에서 죄를 배웁니다. 그러나 동시에 회개를 배웁니다. 우리는 원죄를 배웁니다. 그러나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낮은 자세를 배웁니다. 우리는 『빙점』에서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을 봅니다. 그러나 미우라의 무릎에서 그 얼음을 녹이는 복음의 온도를 봅니다.
『빙점』의 원죄는 개인의 피 속에만 흐르지 않습니다. 가정의 침묵 속에도 흐르고, 사회의 구조 속에도 흐르며, 국가의 역사 속에도 흐릅니다. 그러나 은혜도 그렇습니다. 은혜는 개인의 영혼만 녹이지 않습니다. 가정을 녹이고, 민족의 기억을 녹이고, 역사의 얼음을 녹입니다.
빙점에서 은총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썼고, 사죄했고, 무릎 꿇었고, 평화를 기도했습니다. 『빙점』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까? 당신은 누구에게 아직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못했습니까? 참된 용서는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 이전글[이상기 목사의 목양칼럼] 잊혀진 추석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이유! 26.09.14
- 다음글[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호모 이매지난스, 미래를 상상하는 인간 26.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