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호모 이매지난스, 미래를 상상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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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유약한 인간은 주어진 현실에 힘겹게 적응하면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현실을 넘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살아갑니다. 바로 미래를 그리며 이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이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자 예배하는 인간 “호모 아도란스”(Homo adorans)이며, 동시에 상상하는 인간 “호모 이매지난스”(Homo imaginans)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상상력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학자가 폴 리쾨르(Paul Ricoeur)입니다. 그는 1975년 시카고 대학에서 “상상력 강의”를 하면서, 상상력을 이미 경험한 것을 마음속에 재현하는 재생적 상상력(reproductive imagination)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생산적 상상력(productive imagination)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생산적 상상력은 현실 도피의 공상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발견하고(discovery), 다시 기술하며(redescription), 마침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창조적 능력입니다.
리쾨르의 유고집인 『상상력 강의』(Lectures on Imagination, 2024)에서 그는 생산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영역을 크게 네 가지 차원으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시적 차원(poetic dimension)입니다. 시와 은유는 익숙한 언어의 질서를 깨뜨리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의미들을 새롭게 결합합니다. “여호와는 목자이다”라는 은유는 “여호와”와 “목자” 서로 다른 의미 영역을 조합합니다. 이는 한 존재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수사가 아니라, 기존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우리가 고된 현실을 이전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따라서 시적 상상력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기보다 기존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시와 은유는 창조적 상상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으로서 현실을 새롭게 기술합니다.
둘째는 과학적 모델의 인식론적 차원(epistemological dimension)입니다. 과학 역시 눈앞의 사실을 단순히 복사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델(models)을 만듭니다. 과학적 모델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지만,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발견을 위한 도구”(heuristic tools)로 기능합니다. 유전자의 이중 나선 구조가 보여주는 모델처럼, 이러한 구성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려고 돕습니다. 이런 점에서 시적 은유와 과학적 모델은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하면서도 공통적인 구조를 가집니다. 둘 다 현실을 “마치 무엇인 것처럼”(as if) 생각함으로써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현실의 차원을 드러냅니다.
셋째로 리쾨르는 생산적 상상력이 영향을 현저하게 드러내는 사회·문화·정치적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특별히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y and utopia)의 영역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공동체도 상상력 없이 존재하기 어려움을 말합니다. 이데올로기는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현재의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기존의 권력과 현실을 절대화하면서 종종 현실을 왜곡합니다. 동시에 이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억압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격화시키는 투쟁의 도구가 될 수 있음에 착안합니다. 이에 맞서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현재의 질서와 거리를 두고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게 합니다. 유토피아의 “어디에도 없음”(nowhere)은 단순한 비현실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과 거리를 두며 그것을 비판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는 수단이 됩니다. 따라서 생산적 상상력은 기존 사회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종교적 상징(religious symbol)의 차원입니다. 종교적 언어는 인간이 직접 개념화하기 어려운 초월적 현실을 상징, 은유, 이야기, 환상과 이미지 등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이러한 상징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소진되지 않습니다. 리쾨르가 다른 저술에서 강조하듯 상징에는 언제나 해석을 요청하는 풍부한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요청합니다. 성경의 예언적 환상과 은유와 상징 역시 단순히 미래의 사건을 사진처럼 미리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절망적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열어 가실 새로운 현실을 상상하도록 독자를 초대합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는 상징, 그리고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강의 환상은 당시 포로된 이스라엘의 현실을 아득히 넘어섭니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계의 회복과 백성의 하나 됨을 소망하게 합니다. 이것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종교적 상상력의 강력한 사례입니다.
이 네 가지 차원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는 세계를 새롭게 제시하고, 과학적 모델은 세계를 새롭게 설명하며, 사회·정치적 상상력은 세계를 다르게 구성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종교적 상징은 세계를 하나님의 약속과 희망의 지평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이 모든 영역에서 생산적 상상력은 존재하는 현실을 단순히 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창조적 힘입니다.
그러므로 생산적 상상력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우회로입니다. 우리는 상상함으로써 현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 새롭게 말할 수 있고, 새롭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적 상상력은 개인의 정신적 능력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말하며,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적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암울한 현재 속에서 소망의 미래를 그리는 “호모 이매지난스,” 곧 상상하는 인간이요 곧 창조적 비전의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상상하는 개인을 넘어 창조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공동체를 이루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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