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7. 길은 여기에: 『빙점』을 여는 첫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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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코의 구원 체험으로 『빙점』을 읽다
우리 인생은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길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홋타 아야코, 훗날의 미우라 아야코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을 “성전”이라 가르친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패전 후 교과서에 먹물을 칠하면서, 자신이 아이들에게 가르친 말이 진리가 아니라 시대의 폭력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먹물은 교과서 위에만 칠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양심과 청춘과 신념 위에 칠해졌습니다.
그 후 아야코는 공허와 죄책 속에서 교직을 떠났고, 폐결핵과 척추 카리에스의 긴 투병으로 들어갔습니다. 몸의 생명은 꺼져가고, 마음의 생명은 얼어붙었습니다. 걸어갈 길도, 믿을 진리도, 살아갈 생명도 사라진 듯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길은 여기에』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자서전 『길은 여기에』는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을 첫머리에 세웁니다. 이 제목은 단순한 회고록의 이름이 아닙니다. 길이 없다고 느끼던 아야코에게, 그리스도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찾아오셨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길은 여기에』는 『빙점』을 여는 첫 열쇠가 됩니다.
『빙점』만 읽으면 우리는 죄를 봅니다. 요코의 절망, 게이조의 복수, 나쓰에의 자기애, 사이시의 어둠, 한 가정 안에 얼어붙은 원죄의 온도를 봅니다. 그러나 『길은 여기에』를 함께 읽으면, 우리는 『빙점』을 쓴 사람의 눈물을 봅니다. 죄를 묘사하기 전에 죄책을 통과한 사람, 원죄를 말하기 전에 자기 죄 앞에서 무너진 사람, 용서를 그리기 전에 먼저 용서받아야만 살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빙점』은 단순한 범죄소설이나 가정 비극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구원받은 죄인이 쓴 죄의 문학이며,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쓴 원죄의 문학입니다. 『길은 여기에』 없이 『빙점』을 읽으면 이 작품은 너무 차갑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사랑은 실패하며, 가정은 무너지고, 순수한 요코마저 절망합니다. 그러나 『길은 여기에』를 통해 읽으면, 그 얼음 아래 흐르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죄를 폭로하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보여 주는 목적은 절망이 아니라 해동입니다.
아야코에게 복음은 논문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마에카와 다다시의 사랑으로 왔고, 병상 곁에 앉아 준 편지로 왔으며, 훗날 미우라 미쓰요의 조용한 동행으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길은 여기에』는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먹물 칠한 교과서와 병상과 허무를 지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길을 찾은 한 영혼의 부활 기록입니다.
이 구원 체험을 보아야 『빙점』의 요코도 제대로 보입니다. 요코의 빙점은 아야코의 빙점과 닿아 있습니다. 요코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뒤에는, 아야코 자신의 “나는 무엇을 믿고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빙점』은 차갑습니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복음 없는 냉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를 기다리는 겨울입니다.
그러므로 『빙점』을 읽는 사람은 “누가 나쁜가”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내 안의 빙점은 어디입니까? 내가 잃어버린 길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리스도를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미우라 아야코는 병상에서 그 길을 만났고, 작가가 되어 말합니다.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길이 있습니다. 당신의 죄책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깊고, 당신의 빙점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따뜻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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