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에스겔이 꿈꾼 통일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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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독할 때마다 저는 에스겔 37장으로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이것이 통일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에스겔 37장 1-14절에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는 환상이, 이어지는 15-28절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환상은 모두 포로가 된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개의 막대기를 하나로 붙이라고 하십니다. 유다와 그 동료들, 그리고 에브라임과 북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가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겔 37:17)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그 나라는 하나의 나라가 되고, 한 왕 다윗 아래 하나의 목자와 하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를 누리게 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은 결국 자기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동시에 성경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는 개인의 영적 성숙뿐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상상력과 비전을 일깨우는 행위입니다.
외견상 이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주로 유다와 베냐민, 레위 지파였고, 북왕국의 많은 백성은 이방 민족과 섞였습니다. 또한 "다윗을 왕으로 세우리라"는 약속도 역사적으로는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다윗의 후손 스룹바벨은 왕이 아니라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정치적 통일보다 언약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품으셨고, 사도들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 나아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에스겔이 본 하나 됨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막대기가 하나 되는 환상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요? 저는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통일의 서사이자 미래를 향한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남북의 분단뿐 아니라 이념과 정치, 지역과 세대의 갈등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분열의 현실에만 갇혀 있을 때, 에스겔의 살아 있는 은유는 죽은 은유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은유를 다시 살아 움직이는 상상력으로 읽게 됩니다.
저는 이 본문을 어린아이의 판타지나 단순한 사회적, 정치적 유토피아로 읽고 싶지 않습니다. 에스겔의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은 통일과 연합을 향한 영적 상상력으로 읽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폴 리쾨르는 이러한 독서를 “시적 상상력”(poetic imagination)을 경유하는 읽기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개념과 논리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과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현실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창조적 읽기입니다.
저는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연합과 화해에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과 작은아들을 모두 품으시는 아버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통일을 위해 무장 해제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형제임을 기억하며 꿈꾸고, 준비하고, 나누는 일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통일의 날도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더욱이 에스겔 37장은 통일의 목표뿐 아니라 그 과정도 보여줍니다. 첫째는 부활입니다. 포로라는 무덤에서 살아 나오는 것입니다(겔 37:11-12). 이것은 정치적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는 새 창조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처럼, 통일 역시 전쟁의 결과나 인간의 전략만으로 이루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시적 상상력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치유와 화평입니다. 남과 북은 물론 우리 사회 안에 쌓인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강대국의 침략, 전쟁과 분단, 남남 갈등이 남긴 깊은 상처를 보듬으며 “화평의 언약”(겔 37:26)을 세워야 합니다.
마지막은 코이노니아, 곧 교제의 회복입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갈라놓지만, 복음은 화해를 넘어 교제를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새로운 형제애를 낳고, 그 종말론적 교제는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교제는 대한민국의 하나됨에서 출발하여 남과 북의 공동체 속에 성취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단순히 문화 강국에 머무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명은 영성이 깊은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뛰어난 나라가 되는 것보다, 고난을 통과한 겸손한 민족으로 세계를 섬기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열방을 섬기는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며,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고난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 의미를 얻게 될 것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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