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SNS 시대의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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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추천으로 보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가 ‘참교육’이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 보고 있다. 과연 한국의 고등학교 현실이 이 정도까지 무너져 내렸단 말인가. 물론 드라마적 과장이 있겠지만, 학교 현장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인터넷 도박과 마약, 잔인한 학교폭력으로 오염된 교실에서 교사들은 그저 허수아비처럼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이런 장면도 나온다. 어느 여고생은 3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미모의 인플루언서다. 수업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켜 놓고 라이브 방송(라방)을 하며 팔로워들과 소통한다. 과연 이런 일이 교실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그 옛날 선생님에게 툭하면 몽둥이로 두들겨 맞던 우리들의 고등학교 시대를 되돌아보면 정말 상상불가한 일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를 조심스럽게 제지하던 남자 교사가 그 인플루언서 여학생을 성추행 했다는 거짓 폭로 때문에 누명을 쓴 채 그냥 세상을 등지고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다.
드라마는 ‘교권보호국’이라는 가상의 특수전담반이 무법천지가 된 학교에 투입되어 문제 학생들을 바로잡는다는 설정이다. 물론 교권보호국은 허구의 조직이지만, 시청자들에게 "한국 교육이 이 정도까지 무너졌는가"라는 충격을 안겨준다.
도대체 인플루언서가 무엇이길래 어린 여고생 앞에서 선생님이 꼼짝 못하고 설설 기어야만 할까? 알고 보니 초등학생들조차 SNS에서 조금만 유명해지면 스스로를 인플루언서로 여기며 행동한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란 말 그대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오늘날처럼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일상이 된 시대에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등에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소비를 움직이는 사람을 말한다.
예전에는 교수나 목사, 신문기자, 정치인 등이 사회적 인플루언서였다면, 오늘날에는 유튜버와 틱톡커, 인스타그램 스타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무엇보다 팔로워가 있어야 한다. 팔로워가 1천 명인 사람도 있지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메가 인플루언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기업과 광고업계가 앞다투어 몰려든다. 화장품 하나를 손에 들고 “좋아요”라고 흔들어주면 순식간에 품절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 영향력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플랫폼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인물은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호날두라고 한다. 그의 팔로워는 6억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하는데 그 뒤를 리오넬 메시가 잇고 있다.
이처럼 인플루언서 시장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광고와 화장품, 여행,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이들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인플루언서들이 보여 주는 삶이 언제나 진실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광고와 협찬을 위해 실제보다 더 행복하고 더 성공한 삶을 연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결과 팔로워들은 현실보다 왜곡된 삶을 동경하게 된다.
특히 투자 인플루언서들이 근거 없는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를 권유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실을 입힌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 인플루언서가 가짜 명품을 판매했다가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건강식품과 다이어트 제품을 허위 광고하다 제재를 받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좋아요 중독’이다. 우리는 인터넷 곳곳에서 “좋아요와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다. 심리학자들은 ‘좋아요’가 도박과 비슷한 방식으로 도파민(몰입과 쾌락의 호르몬)을 자극한다고 말한다. 조회수와 댓글, 구독자 수가 어느새 자존감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영향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는 초청이었다.
예수님은 또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의 SNS 문화는 얼마나 진실한가보다 얼마나 많이 노출되는가를 경쟁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좋아요’를 숭배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더 많은 팔로워를 쌓기 위한 경쟁은 SNS 시대의 바벨탑을 닮아가고 있다. 바벨탑은 하늘에 닿기 위해 벽돌을 쌓았지만, 오늘의 사람들은 더 많은 ‘좋아요’를 얻기 위해 자신을 쌓아 올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팔로워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신실한 사람이다. 팔로워는 적을지라도 빛과 소금처럼 세상을 밝히고, 겨자씨처럼 작지만 생명을 키워 가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진짜배기 인플루언서가 아닐까?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 한 구절이라도 삶으로 살아내려 애쓰는 제자를 찾고 계신다. 인터넷을 통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좋아요’를 구걸하기보다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참교육’이 절실하듯,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참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신다.
조명환 목사(크리스천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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