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어떤 모양이든 잘 살아낸 한 인생이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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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까지 목회자로 15년(부교역자 포함)을 사역했고, 신학은 목회학 석사부터 박사과정까지 14년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로 어느덧 쉰여섯 해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물론 아직도 배울 것이 훨씬 많고, 제 경험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만 지금까지의 짧은 삶을 돌아보며 얻은 몇 가지 소박한 결론이 있습니다.
첫째,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목회는 설교를 잘하고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경험해 보니, 더 중요한 목회는 사람의 상처를 품고, 자신의 상처도 견디며, 오래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섣부른 열심은 때로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생사람을 잡기도 하고, 결국 자신도 목회에 학을 떼며 지쳐 떠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목회하시는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고 인정해 드리고 싶습니다.
둘째, 신학은 적당히 아는 듯, 모르는 듯 공부해야 오래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학문은 참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따지고 과도하게 공부하다 보면 몸과 영혼이 먼저 지쳐 병이 나고 맙니다. 저 역시 박사과정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실패한 Ph.D.' 였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한 번의 응급실행과 두 번의 눈 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학문도 오래 걸어가기 위해서는 은혜와 쉼이 필요했습니다. 주의 은혜로 몸 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학문을 이어가시는 학자분들을 보면 부럽고 참 존경스럽습니다.
셋째, 인생은 결국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인 것 같습니다.
원목으로 사역하는 지난 9년 동안 병원과 호스피스에서 죽어가는 사람 천 명이 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많이 배웠든 그렇지 않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쉬워하는 것은 놀랍게도 비슷했습니다.
"학위를 끝마쳤어야 했는데…" "책을 한 권 더 썼어야 했는데…" "사업에 성공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들이 흘리는 눈물 속에서 훨씬 자주 들었던 고백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조금 더 사랑하며 지낼 걸…" "자식들과의 대화가 끊기지 않게 더 노력할 걸…" "손자, 손녀들을 한 번 더 안아주고 이뻐해 주고 갈 걸…" "스치고 지나간 모든 사람에게 좀 더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할 걸…"
삶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성취보다 관계를, 업적보다 사랑을 돌아보았습니다.
몇 해 전, 여든두 살에 호스피스로 옮겨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던 한 남성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을 앞둔 분 같지 않게 얼굴에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I have had a good life." (저는 정말 좋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묻자 그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무일푼이었고 가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했고, 아들 셋과 딸 하나, 네 자녀를 낳았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중고 픽업트럭 한 대를 장만했고,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미시간 호수로 피크닉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웃던 웃음소리. 돗자리 위에서 행복해하던 아내의 모습. 그리고 조금 더 세월이 흘러 자신이 아프기 전까지, 열 명이 넘는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던 기억들.
그는 그 수많은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게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의 모습은 호스피스에 있는 분 같지 않았고, 다가올 죽음의 두려움보다 한 인생을 참 잘 살아낸 사람의 평안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사신 분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대단하고 성공한 분들이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몸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성공을 향해 아등바등 달려가는 것일까요? 공부도 중요하고, 목회도 중요하고, 일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우리가 온 맘 다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잃어버릴 만큼 중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신앙의 완성도, 목회의 열매도, 인생의 성공도 사랑이라는 한 단어 안에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며, 또 그 사랑을 기쁘게 받아 누리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 잘 살아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언젠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 역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참 좋은 인생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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