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더 많은 분들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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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호스피스에서 전문 원목으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분의 생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수많은 분 중에서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문득문득 '좋은 죽음(Good Death) 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되새기게 만드는 두 분이 계십니다.
제가 돌보던 환자 중에 백 번째 생일을 맞이하셨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심장질환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그리고 잘 낫지 않는 다리의 욕창으로 인해 호스피스 케어를 받게 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호스피스 케어를 할머니 스스로 선택하셨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충분히 살았어요. 참 감사한 삶이었지요." 할머니는 자신의 삶이 황혼에 접어들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계셨습니다. 침대에서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할머니의 손 곁에는 늘 스마트폰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자녀와 손주, 증손주들의 전화번호와 SNS 계정이 빼곡히 연결된, 할머니만의 작은 광장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틈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지막이 속삭이셨습니다. "사랑한다", "건강하게 지내라", "너희 덕분에 참 행복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증손주의 재롱 섞인 사진을 보며 아이처럼 미소 짓기도 하셨습니다. 마치 긴 여행을 앞둔 여행자가 소중한 이들에게 빠짐없이 작별 인사를 건네는 풍경 같았습니다.
그렇게 여한 없이 삶을 정리하시던 할머니는 마지막 이틀간 깊은 잠에 드셨고, 호스피스 팀의 세심한 돌봄 속에서 평안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가족들의 눈물 속에는 슬픔보다 더 큰 감사가 고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정말 아름답게 가셨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반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또 다른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섬기던 몇 안 되는 한국인 호스피스 환자 중 한 분이었던 85세의 할머니였습니다. 오랜 병원 생활로 할머니의 기력은 이미 다해 가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은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호스피스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직 우리 문화에서 호스피스는 어쩐지 '포기' 나 '의료적 방임'처럼 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여라도 주변에서 "부모를 쉽게 포기했다"는 손가락질을 할까 두려운 마음도 컸을 줄 압니다.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연명치료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의료기기 소음, 끊임없는 검사와 주삿바늘 속에서 할머니는 급격히 지쳐가셨습니다. 할머니는 힘겹게 입을 열 때마다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그러나 몇몇 자녀분이 거의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의견이 나뉜 자녀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할머니는 병실에서 홀로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호스피스 돌봄이 시작된 것은 임종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이었고, 이는 평안하고 의미 있는 죽음이라는 호스피스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자녀들과 오손도손 손을 맞잡고 좋았던 날들을 추억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평안하게 작별 인사를 건넬 소중한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 뒤였습니다.
이 두 분을 기억할 때마다 저는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은 물론 슬프고 아픈 이별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기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곧 인생의 실패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 세대를 충실히 살아내고 자신의 삶을 완수한 분들에게, 죽음은 삶의 마지막 장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엄숙한 과정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호스피스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죽음이 밀려오는 그 순간까지, 남은 시간을 가장 인간답게, 가장 평안하게, 그리고 가장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돌봄입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분이 자신의 삶이 서서히 마무리되어 간다는 것을 직감하곤 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죽음을 무조건 부정하며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밀도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가족들과 오래된 앨범을 보며 함께 웃는 것,
가슴에 묻어둔 해묵은 미안함을 꺼내 용서를 구하는 것,
고마웠던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후손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좋은 죽음(Good Death) 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잘 살아왔으니, 여한 없이 잘 떠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분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두려움이 아닌 평안과 감사로 채워 행복하게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래봅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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