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궁극적 체험, 궁극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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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관심 있게 봅니다. 비영어권 부문에서 공개 3일 만에 1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약과 학교폭력에 얽힌 학생들의 현실을 보면서, 이곳 미국 이민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되는 마약의 위험성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점심을 나눈 80대 중반의 한 권사님의 아들도 마약 문제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셨는데, 아들 샨(가명)은 캘리포니아에서 고교 시절부터 마약 딜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네 차례나 총상을 입었고, 미국 감옥 생활 끝에 한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부모는 새벽마다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이민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 되어, 아들 샨은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감옥을 드나들며 마약을 끊지 못하던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마침내 마약을 정리하게 된 것입니다.
몇 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목회자가 된 샨을 직접 만나 어떻게 마약을 끊고 목회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약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경험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되는 영광의 경험”과 유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궁극적인 체험 이후, 그는 한 달 동안 마약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달이 지난 뒤에 “이제는 네가 의지로 마약을 제어해야 한다”는 내면의 음성을 들었고, 그 결단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궁극적 체험”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 구원자이시고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세상을 상대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세상의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고백합니다. 궁극적인 분을 만나면 세상의 중요한 가치들이 상대화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빌 3:7-8).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에게도 유사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1654년 어느 날 밤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약 두 시간 동안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그날 밤의 심경 변화를 “불(Fire)”이라는 짧은 기록으로 남겼고, 훗날 이글은 그의 명상록인 『팡세(Pensées)』에 수록되었습니다. 파스칼은 그 단장에서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망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그 기록을 종이에 적어 외투 안감에 꿰매어 넣고, 평생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 영적인 체험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일의 철학자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는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부여된 가치(bestowed worth)”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특성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려면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은 상실될 수 있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상황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의 신학적 근거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월터스토프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진 핵심적 특징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애착의 사랑(love of attachment)”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존재의 특성이나 장점에 근거한 “매력에 기반한 사랑(love of attraction)”이나, 타자를 향한 선의와 동정에 기초한 “시혜적 사랑(love of benevolence)”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 곧 아가페적 열정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창조주께서 두렵고 완벽한 윤리만을 강조하는 냉혹한 도덕론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무한한 권력을 가진 억압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 되신 분이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조정하도록 만듭니다.
그 완전하신 분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 곧 하나님의 닮은 꼴로 창조하시고,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사 43:4)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향해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사 43:7)로 부르셨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큰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 비로소 “아가”(Song of Songs)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도장같이 가슴에 품어 주시고, 인장같이 팔에 매어 주십시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열정은 스올처럼 맹렬합니다.
그 불꽃은 여호와의 불꽃과 같아서,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고,
홍수라도 그것을 삼키지 못합니다.”(아 8:6-7, 私譯)
하나님을 만나는 궁극적 체험은 결국 궁극적 사랑의 체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많은 물도 끄지 못하며, 어떤 홍수도 삼켜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약 중독보다 강하고, 죄의 권세를 넘어서는, 죽음보다 강력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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