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화 목사의 두드림] 침묵이 열어주는 하나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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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면 나무 숲 사이로 환하게 비쳐 오는 햇살과 코끝으로 전해 오는 신선한 바람에 거대한 생명의 살아움직이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누구나 다 알듯이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인간 또한 자연의 소산물이며 자연의 법칙에 위배될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누구나 충만한 삶, 가치 있고 열매가 있는 삶을 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들로 하여금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요 10:10). 그럼 과연 충만한 삶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우선, 충만한 삶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 혹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가 있는 귀한 선물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화도 우리의 온 정성과 마음으로 귀 기울여 애쓰며 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구하라고 하셨듯이, 우리의 열망과 결단을 통해서 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만한 삶으로의 초대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많은 내적, 외적 소음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음을 제거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훈련(discipline)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고독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세상을 등지고 외딴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물론 외부의 소음을 차단한다고 해도 내면의 소음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고독의 시간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독의 중심에 두면 마음의 기준점이 새로 생기게 됩니다. 고독은 결국 어디서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께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것이 오직 기도에 대한 것임을 알듯이, 우리는 기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기도는 마음이 내켜서 하거나 큰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란 우리를 “사랑하는 자” 라고 부르시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듣는다라는 라틴어는 ‘아우디레’(audire)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 온전히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을 ‘옵 아우디레’(ob-audire)라고 합니다. 이 말에서 순종(obedience) 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하시는 동안 사람들을 피해 외딴 곳으로 가셔서 홀로 그를 보내신 분과의 시간을 보내시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신 분이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마음이 닫혀 있으면 그 닫혀 있는 정도만큼 귀도 막히게 됩니다. 귀머거리를 뜻하는 라틴어 ‘수르두스’(surdus)라는 말에서 ‘어리석다’ 라는 뜻의 영어 ‘업저드’ (absurd, absurdity)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닫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류의 사람은 결국에는 귀가 얇아져 온갖 다른 음성에 휘둘리며, 자신이 누구이며 또한 자신이 사랑을 받는 자라는 진리를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충만한 삶은 곧 세상과 나를 비우는 삶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으로 채우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계십니까? 우리를 성가시게 하며 혼란의 한가운데로 이끄는 온갖 잡음과 소란에 가득 찬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십니까? 아니면 영원하고 충만한 삶을 선물로 약속하신 분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십니까?
분주한 세상 속에서 가끔은 뒤로 물러나서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초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보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 가보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손인화 목사 (Black River Falls UMC, 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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