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두 달 동안 세상을 행복하게 했던 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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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온콜(on-call) 담당이었던 저는 병원에서 한 통의 콜을 받았습니다. 연락은 2층 수술 회복실(PACU) 간호사에게서 왔습니다.
“원목 목사님, 방금 12주 된 아이를 유산하신 환자분이 계신데요, 유산된 아이가 용기에 담겨 있으니 축복기도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산부인과 병동에서 종종 받는 요청입니다. 태아 사망(fetal demise)이라 불리는 임신 초기 또는 중기의 유산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임산부 네 명 중 한 명이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진 부모들을 위로하거나, 유산된 아이를 위해 축복기도를 드려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곤 합니다.
저는 급히 수술 회복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산모는 이미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뒤였습니다. 수술은 끝났고 병실도 비어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유산된 아이가 담긴 작은 용기를 조용한 방에 보관해 두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꼭 원목님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어요. 아이의 남은 흔적을 위해서라도 기도하고 축복해 달라고요.”
저는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 위해 차트를 열어 보았습니다. 환자는 이미 두 아이를 둔 마흔두 살의 여성이었습니다. 여러 정황상 앞으로 다시 임신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간호사는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이 임신은 마흔 두살이나 된 산모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대요. 갑작스러운 선물 같은 임신이었고,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 두 달 동안 가족 모두가 정말 행복했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작은 용기에 담긴 생명의 흔적을 바라보며 문득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명의 가치를 얼마나 오래 살며 무슨 일을 했는가로 판단합니다. 몇 년을 살았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을 바라보시는 기준은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이름도 없고, 사진도 없고, 생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그 짧은 두 달 동안 한 가정에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희망을 주었고, 꿈을 주었고, 웃음을 주었고, 가족들의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는 자신에게 허락된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룬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건네준 작은 용기를 두 손으로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의학적으로는 ‘태아 조직(fetal tissue)’이라 불리는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것은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들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딸이었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한 가족이 사랑했던 생명의 흔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생명의 흔적을 손에 들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엄마의 뱃속에 잠시 머물다 간 이 생명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비록 이 땅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이 아이가 가족들에게 예기치 않은 기쁨과 행복이 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지으신 생명이니 주께서 친히 품어 주시고, 주의 사랑 안에서 붙들어 주옵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축복하소서! 또한 아이를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상실의 슬픔 가운데서도 주님의 평강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생명이란 참 신비롭습니다. 어떤 생명은 백 년을 살고도 세상에 별 흔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생명은 단 두 달만 존재했음에도 한 가족의 마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사랑과 기쁨을 새겨 놓습니다.
병원을 나오며 문득 시편 139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
세상은 이 아이를 기억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시작된 생명은 끝내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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