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어린 왕자』 10. 별이 된 어린 왕자: 죽음, 귀환, 그리고 남겨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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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가까이 산다. 『어린 왕자』의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지만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뱀을 만난다. 뱀은 처음부터 죽음의 냄새를 품고 등장한다. 그는 빠르고 조용하며, 인간을 “그가 나온 흙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뱀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턱이다. 이제, 어린 왕자는 그 문턱을 지나 자기 별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그의 떠남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조종사에게 어린 왕자는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제 전과 같지 않다. 별들은 어린 왕자의 웃음소리를 품은 따뜻한 장소가 된다. 상실 이후 세계는 겉으로는 그대로이지만, 사랑했던 이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별은 천체가 아니라 기억의 창이 되고,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현존의 방식이 된다.
생텍쥐페리 자신의 생애도 이 마지막 장면과 기묘하게 겹친다. 그는 1944년 정찰 비행 중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실종의 형식으로 남았다. 마치 어린 왕자처럼, 그는 하늘 어딘가로 사라졌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남겼다. 한 사람의 삶은 언제 끝나는가? 육체가 사라질 때인가, 아니면 그의 사랑과 말과 증언을 기억하는 이들이 더 이상 없을 때인가?
죽음은 실존이다. 『어린 왕자』는 죽음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이별은 아프고, 남겨진 사람은 혼란스럽다. 조종사는 아이의 몸을 찾지 못했고, 독자는 그 빈자리를 오래 바라본다. 그러나 작품은 상실 이후에도 사랑의 의미가 계속된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는 우리 안에 하나의 별이 된다. 우리는 그 별빛 아래서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더 깊이 기억하며, 더 책임 있게 살아간다. 나는 오늘 여러 별을 헤어본다.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죽음은 마지막 원수다. 그러나 복음은 그 원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기에, 믿는 자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소망이 된다. 바울은 우리가 소망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슬픔은 남지만, 절망이 주인이 되지 못한다. 결국, 죽음은 사망에게 삼킨 바 된다.
그러므로 별이 된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라진 이들의 별빛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사랑했던 이들이 남긴 웃음, 말, 책임, 믿음의 흔적을 어떻게 증언으로 이어 갈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상실의 밤에도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떠난 이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별들의 사랑을 다시 살아 내는 사람이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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