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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과테말라 산지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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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5-22 | 조회조회수 : 1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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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에서 사역하시는 안명수 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저는 과테말라 북부와 멕시코 남부 국경 지대에 위치한 우에우에떼낭고(Huehuetenango) 주 산 마테오 이스타탄(San Mateo Ixtatán)의 산골 마을 세벱(Sebep)을 찾았습니다. 


이곳의 에벤에셀 성경학교는 1995년 미국 선교사 데이빗·헬렌 엑스트롬 부부와 안명수 선교사님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후 2020년에 에벤에셀 성경신학교로 확장되면서 신학과와 목회학과를 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학과에서 “이사야서와 설교”라는 과목을 맡아 현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집중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 동안 약 40시간에 걸쳐 강의와 실습을 진행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목회자들과 귀한 시간을 함께하였습니다.

   

국제공항이 있는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선교사님 댁에 하루 머물며 짐을 정리한 뒤, 에벤에셀 성경신학교가 있는 세벱으로 올라갔습니다. 주일에는 원주민 교회에 들러 설교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유창한 스페인어 통역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비포장 산길을 따라 이동하며 고산지대의 장엄한 풍광을 체험했습니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연봉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십 마일 떨어진 능선과 산기슭마다 자리한 원주민 마을들이 아득하게 펼쳐졌습니다. 세벱의 고도는 2,600미터를 넘나듭니다. 조금만 부지런히 걸어도 숨이 차고, 밤에는 고산지대 특유의 기압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안명수 선교사님은 1989년 미국 충현선교교회의 첫 파송 선교사로 이곳에 오신 이후, 무려 3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해 오셨습니다. 그동안 “추”(Chuj) 방언을 사용하는 원주민 교회 30여 곳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신학교를 통해 원주민 교회의 지도자들을 양육해 오셨습니다. 


며칠 동안 채소와 콩, 팥, 삶은 달걀과 닭고기가 들어간 국, 곡식을 갈아 만든 음료와 커피, 그리고 갓 구워낸 옥수수 부침인 ‘또띠아’(tortilla)를 먹으며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그 음식에도 익숙해졌습니다. 배우며 목회하려는 원주민 목회자들과 학생들을 바라보며, 척박한 환경을 이겨 내는 신앙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산지의 신앙적·지적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신학교의 중요한 사명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오래전부터 마야 원주민 공동체의 신앙 운동이 자생력을 유지하도록 세심하게 사역해 오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원주민 신앙 운동의 자생성을 해치는 문화적 제국주의를 경계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모든 것을 주도하기보다, 마야 원주민들의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신앙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언제나 원주민들이 한 걸음 먼저 나아가도록 배려하며, 그들의 주도적 활동을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돈으로 밀어붙이는 물량주의적 선교를 지양하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신학교와 교회의 운영은 마야 원주민들 스스로 감당하고 있으며, 교회들은 자치적으로 노회를 구성하여 자생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스페인어 교육은 마야 원주민들이 언어적 고립을 넘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선교팀과 함께 이 고산지대의 원주민 교회를 방문했던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당시 제 마음에는 깊은 상처와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해발 2,600미터 내외의 험준한 산지에서 살아가는 마야 원주민들은 결코 스스로 이 척박한 환경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과 노예화, 그리고 강제적인 혼혈 정책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많은 이들은 메스티조(mestizo)가 되었고, 남은 자들은 생존을 위해 비옥한 평야를 떠나 산지로 밀려 들어와야 했습니다. 한때 수많은 피라미드가 세워졌던 풍요로운 땅을 뒤로한 채 말입니다. 스페인 문명은 잔혹했습니다. 가톨릭을 기반으로 한 식민 제국주의 세력이 남긴 상처와 범죄는 이곳 중미에서도 깊은 비극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의 사역을 바라보며 저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여호와의 종의 모습(사 42:1 이하)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연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랜 세월의 헌신 끝에 맺혀 가는 열매들을 바라보며, 제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는 듯했습니다. 산 마테오 이스타탄 지역에서 청춘을 바친 선교사님의 모습을 보며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과테말라 곳곳에 남아 있는 마야 문명의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떠올리며, 이 땅의 원주민들이 이제는 복음 안에서 새로운 영광의 미래를 세워 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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