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사랑하던 애완동물과 헤어져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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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저는 아흔두 살의 한 호스피스 노인 환자와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다섯 달 전, 평생 사랑하며 함께 살아온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는 몇 번이고 아내 사진을 바라보며 “아직도 매일 생각이 난다” 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구십 년 넘는 삶 속에서 가장 오래 함께했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무너져 내리는 일일 것입니다.
그분의 방에는 “트웬티(Twenty)” 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가 소파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을 무척 잘 따르는 개냥이 스타일의 고양이였습니다. 할아버지 무릎 위에 올라와 가만히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참 온순하고 다정한 애완묘였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고양이인데, 세상을 떠난 아내가 “20살까지 오래 살라”고 이름을 트웬티라고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그 고양이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습니다. 남겨진 두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마지막 가족이자 위로였습니다. 방 안에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트웬티는 살아 있는 온기였고, 동행이었고,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작은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분의 알츠하이머병이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가족들과 의료진은 더 이상 혼자 지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중증 치매 환자들을 위한 메모리 유닛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그 결정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활동 프로그램도 더 체계적이고, 스탭들의 돌봄도 훨씬 세심했습니다. 안전과 건강을 생각하면 필요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았습니다. 트웬티를 함께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환자분은 고양이 밥 주는 시간을 자주 잊고 있었고, 배설물 관리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고양이를 돌볼 수 있는 다른 친척 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날, 그분은 제 손을 붙들고 흐느끼듯 말했습니다: “아내가 죽고… 나한테는 이 고양이만 남았는데… 우리 트웬티…”
그 순간 제 마음도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평생 애완동물 없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기에 인간이 얼마나 깊이 동물에게 위로받고, 또 동물이 얼마나 깊숙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 백방으로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책상으로도, 건강상으로도 어렵다는 답뿐이었습니다. 혼자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라면 반려동물과 함께 지낼 수 있지만, 모든 면에서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결국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노년은 때로 참 잔인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사랑하던 것들을 놓아야 합니다. 운전대를 놓아야 하고, 집을 놓아야 하고, 건강을 놓아야 하고, 사랑하던 사람을 놓아야 하고, 기억을 놓아야 하고, 그리고 함께 울어주던 애완동물마저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사랑의 마지막 단계인 이 “놓아줌” 을 결국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끝까지 내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눈물 속에서도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때” 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성가 헨리 나우웬 역시 진정한 사랑은 결국 잘 보내주는 용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그분의 방을 나오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개와 고양이를 주신 이유는 단순히 애완 장난감처럼 즐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위로와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말 없이 곁에 머물러 주고, 따뜻한 체온 하나로 무너진 영혼을 붙들어주는 존재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는 작은 통로로 창조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떠나보낼 수 밖에 없는 이 아이들과 언젠가 무지개다리 건너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 더 이상 이별 없이 함께 뛰놀고, 뒹굴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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