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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어린 왕자』 9. 사막의 우물: 목마른 영혼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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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5-18 | 조회조회수 :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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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스라엘 사막에 가본 적이 있다. 『어린 왕자』에서 사막은 비어 있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불필요한 것이 사라진 뒤, 가장 본질적인 것이 드러나는 자리다. 끝없는 모래, 침묵, 별빛, 그리고 갈증. 사막에 선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을 꾸밀 수 없다. 지위도, 소유도, 언어도, 문명의 장식도 모래바람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그곳에서 인간은 겸허해진다. 목마른 존재가 된다.


사막은 영적 공간이다. 어린 왕자와 조종사가 사막에서 우물을 찾아가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신비롭고 영적인 순간이다. 우물은 단순히 물이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 끝에 발견되는 은총의 자리다. 물은 몸을 살리지만, 그 물을 찾아 함께 걸어간 시간은 영혼을 살린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명언이다. 그렇다. 아름다움은 표면에 있지 않다. 깊은 곳에 감추어진 생명의 가능성 때문에 사막은 견딜 만한 장소가 된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현대인은 풍요 속에서 목마르다. 마실 것은 많아도 해갈은 적고, 선택지는 많지만 만족은 짧다. 우리는 소비로 공허를 메우려 하고, 속도로 불안을 잊으려 하며, 오락으로 침묵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영혼의 갈증은 더 많은 물건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 의미를 갈망하고, 자극이 아니라 만남을 필요로 한다. 사막의 우물은 바로 이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생명이다.


나는 우물물을 마신 적이 있다. 우물물은 기억의 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함께 걸은 발걸음, 도르래의 노래, 밤하늘의 침묵, 친구의 얼굴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 물은 단순한 물보다 더 달다. 사랑이 닿은 것은 평범한 것을 거룩하게 만든다. 물 한 모금도 관계 안에서 은총이 되고, 길고 고단한 밤도 만남 안에서 기억이 된다. 인간은 홀로 마시는 물만으로 살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찾아낸 물, 함께 견딘 시간이 깃든 물로 산다.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


성경은 인간의 목마름을 깊이 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를 주셨다. 복음은 영혼의 갈증을 덮어 두는 위로가 아니라, 그 갈증의 참된 근원을 드러내는 은혜다. 오늘 우리의 사막에도 하나님이 숨겨 두신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은 시장 한복판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만남 속에서 열린다. 목마른 영혼은 결국 생명의 하나님을 찾고 있다. 찾는 자는 찾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수를. 나는 타는 목마름 가운데 주님을 만났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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