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어린 왕자』 8. 가로등 점등인의 별: 무의미해 보이는 충실함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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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타적일 수 있을까? 어린 왕자가 만난 여러 별의 사람들 가운데 점등인은 특별하다. 왕은 명령하려 하고, 허영쟁이는 찬사를 구하며, 사업가는 별을 계산한다. 그러나 점등인은 다만 등불을 켜고 끈다. 아침이면 끄고, 저녁이면 켠다. 문제는 그의 별이 너무 빨리 돌게 되었다는 데 있다. 하루가 짧아져 그는 쉴 틈도 없이 등불을 켜고 꺼야 한다. 그의 노동은 우스꽝스럽고 피곤해 보인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그를 존중한다. 왜냐하면 그는 적어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점등인의 일은 간단하다. 그는 제국을 다스리지도 않고, 박수를 받지도 않으며, 별을 소유하지도 않는다. 그의 행위는 작고 반복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반복 안에 충실함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는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기 책임을 버리지 않는다. 명령이 오래 되고 상황이 변해, 1분에 한 번씩 불을 켜고 꺼야 하게 되었더라도, 그는 등불을 밝히는 일을 자기 분복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 장면은 맹목적 복종의 미덕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텍쥐페리는 무의미해 보이는 노동 속에서도 타자를 향한 책임이 남아 있을 때, 인간은 존엄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속도가 답이 아니다. 오늘의 세계는 속도와 효율을 숭배한다. 빠른 성과, 눈에 보이는 결과, 측정 가능한 업적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세계를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종종 이름 없는 반복이다. 매일 아이를 깨우는 손길, 병실을 지키는 간호, 새벽마다 기도하는 성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리에서 공동체를 돌보는 사람들. 이들의 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작은 등불처럼 어둠을 밀어낸다. 삶은 거대한 사건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작은 일에 충실함이 하루를 지키고, 하루가 쌓여 한 세대를 밝힌다.
목회와 선교의 현장도 그렇다. 한 영혼을 오래 기다리는 일, 같은 마을을 다시 방문하는 일, 즉각적인 열매 없이 말씀을 가르치고 밥상을 나누는 일은 세상의 평가 기준으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의 방식은 종종 느리고 반복적이고 어리석다. 하나님 나라는 소란스러운 과시보다 겨자씨 같은 신실함으로 자란다. 점등인의 별은 묻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도 너는 너의 등불을 밝힐 것인가?
성경은 작은 충성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을 칭찬하신다. 충성은 큰 무대에서만 증명되지 않는다. 주님께 맡겨진 자리에서 오늘의 등불을 켜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우리의 일이 작아 보여도, 그것이 진실한 사랑과 책임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 앞에서 예배가 된다. 어둠이 깊을수록 등불 하나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렇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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